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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571] 책방에서 내던 잡지 <줄탁啐啄>을 받았습니다. 제목 '줄탁'은 '줄탁동시啐啄同時'에서 가져온 말입니다. 새끼 닭이 태어나기 위해 알 안에서 쪼고 어미 닭이 밖에는 쪼는 것을 말하죠. 불가에선 '깨달음의 순간'을 그리 말하기도 합니다.

제가 책방 잡지를 만들고 있다 말씀을 드렸더니 김수동 선생님께서 오랫동안 보관했던 책이라며 내주셨습니다. <줄탁>은 지금은 사라진, 대구 봉산동에 있던 책방 '책터 하늘북'에서 만들던 책방 잡지였습니다. 두 번째 권인데 1993년 5월 20일에 나왔습니다.

첫 번째 권이 언제 나왔는지 몇 호까지 발행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책방이 문을 닫은 지 오래라 책터 하늘북에 대한 이야기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딱 한 줄 책터 하늘북에 대한 글을 발견했는데 2003년까진 문을 열었었군요. 하지만 그 후 소식은 알 길이 없습니다.

<줄탁>은 116쪽 작고 얇은 책입니다. 판화가 이철수 님의 작품 표지화로, 신영복 선생님의 글씨를 제호로 삼았습니다. 명진 스님, 염무웅 선생님 등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굉장히 공들여 만든 잡지입니다. 다른 신문에 실린 글이나 책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가져온 글꼭지가 많아 아쉽기는 하지만 이 잡지의 의미가 퇴색할 정도는 아닙니다. 예전에는 책방에서 이렇게 작은 잡지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2013년, 42호까지 나오곤 휴간에 들어간 <책방 나들이>가 기억나는군요. 42호의 커버스토리는 '서점은 죽지 않는다'였습니다. 마지막 <책방 나들이>에 실린 안산 대동서적 정명하 님의 글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정보다 각자의 생활과 생각이 더욱 중요시되는 개인주의가 팽배한 지금 세상에서 그나마 정서를 유지시켜주고, 나의 발전을 위해 생각들을 모아주고 필요한 지식을 얻게 해주는 것은 책이며 그것을 제공하는 서점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야 할 것들이다."

'서점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하지만 세상에서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어제 창원에서 '시민서점'이라는 동네책방을 운영하는 큰 고모님께 더는 운영이 어려워 문을 닫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거의 16년 가까이 자리를 지켰는데, 그 결정을 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하셨겠죠. 아마 올해도 지역의 많은 동네책방들이 문을 닫지 않을까요.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가 5월 28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가구당 도서구입비는 2만3734원이었습니다. 2003년 전국단위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던 2007년 1분기의 2만3734원보다 떨어졌습니다. 작년과 비교하면 12.3%가 감소했습니다. 출판계의 불황은 끝이 보이지 않는군요. 지난 설날 고모님을 뵈었을 때만 해도 어떻게든 버텨보겠다 하셨는데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다시 <줄탁>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잡지 말미에 역사학자 김성칠 선생님의 1946년 4월 22일 일기 모두가 실려 있습니다. 김성칠 선생님의 일기는 <역사 앞에서>(창비)라는 책으로 묶여 나온 지 오래입니다. 이 책에 대해선 책방일지에서 언젠가 소개한 적이 있는 듯합니다. 문장이 길지만, 사사로이 남기는 일기나 기록일지라도 마음을 가라앉히고서 써야 한다는 선생님의 글은 새겨둘 만 합니다.

"나는 때로 내가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과 다툰 일이 있을 때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서 마음의 흥분이 풀릴 때 생각해 보면 피차에 아이들 같은 고집이어서 지면에 재현할 만한 두드러진 사실도 아니어서 그만두게 된다.

이렇게 함이 일기의 진실성에 어긋나고 또 자기 반성의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때도 있으나 흥분된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그리고 싶지 않으며 평상적이 아닌 내 마음으로 평상적이 아닌 저쪽의 자태를 그려서 앞으로 자손의 누에라도 비칠까 두려워하는 바이며, 또 설사 내가 죽기 전에 내 일기를 불살라버리는 현명과 여유가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기록을 통하여 내 사랑하는 사람의 왜곡된 이미지를 문자에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서 내 머리 속을 고정화하고 또 그 표현을 시시로 읽음으로 해서 더욱 그 불순한 환영을 내 가슴 속에 날인함으로써 공연한 불신과 증오를 조장해서 피차의 생활을 불행에 이끄는 결과가 될 것을 저어하기 때문이다."

책터 하늘북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래도 <줄탁>은 지금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책방은 사라지지만 책의 생명력은 영원을 누리지는 못하나 질깁니다. 세월이 흘러 책방이 문을 닫더라도 아마 책방일지는 오랫동안 그런 책방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겠죠. <줄탁>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곧 나올 <소소책방 책방일지>의 미래를 보는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