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75] 책은 인간이다

[그림]은 앙리 르바스크(Henri Lebasque, 1865-1937)의 '책 읽는 여인'입니다.

[D+575] 책방일지 원고를 마무리하자 책방 컴퓨터가 고장 나버렸습니다. 오랫동안 부품들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썼는데 하필 메인보드에 문제가 생겨 다시 중고제품으로 구해 수리했습니다. 메인보드를 구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더니 지금껏 썼던 제품이 2008년도에 나왔더군요. 오래된 구닥다리 컴퓨터이긴 하나 조금 느린 것을 빼면 지금껏 별 불편함을 모르고 썼습니다.

아무리 해도 컴퓨터가 켜지지 않았을 땐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더군요. 지금껏 썼던 원고, 사진에 대한 걱정이 사실 제일 컸습니다. 데이터가 온전하게 살아있으니 다행입니다만, 지금껏 디지털로 저장된 것들을 잃어버린 경우가 꽤 많습니다.

원고나 사진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써봤지만 역시 종이로 출력해서 정리하거나 사진의 경우 필름으로 보관하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더군요.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다이어리나 노트에 옮겨두는 편이 마음에 놓입니다. 하지만 작업을 대부분 컴퓨터로 디지털카메라로 하니 종종 불상사가 생기거나 실수하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책을 대신할 수 있는 디지털 매체가 발전한다해도 책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보존성'이라 생각합니다. 백업과 검색 기능이 뛰어나도 책을 대신할 순 없습니다. 꽤 많은, 잡다한 글들을 온라인에 썼지만 대부분 휘발揮發하고 말았죠. 모뎀으로 천리안 접속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20년도 더 지난 과거입니다.) 살펴보아도 온라인에 썼던 글들은 제 곁에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제가 가진 기록은 수첩과 노트, 그리고 잡지나 책에 실린 것이 대부분입니다. 생각해보면 온라인에 썼던 글들은 완결성이 부족하거나 가벼운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렇게 온라인에 책방일지를 쓰더라도 어떻게든 '완결성'을 갖추자 마음 먹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건 아무래도 내공이 부족한 탓이겠지요.

시인 정호승 님은 "책은 인간이다"고 단정 지어 말했습니다. 책이 인간인 까닭은 책에도 운명이 있기 때문이요, 책에서 가장 순수한 영혼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책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단언합니다.

"과연 책이 사라진 세상, 책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오게 될까. 책 읽는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없는 날이 오게 될까. 나는 단연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날이 바로 인간의 죽음의 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책의 죽음은 곧 인간의 죽음이다. 만일 그런 날이 온다면 인간은 영혼을 잃게 될 것이다. 책은 인간 영혼의 한 구체적인 모습이다. 인간의 영혼을 찾아볼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책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서 인간의 가장 순수한 영혼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책은 인간의 영혼의 먹이이자 모유다." <정호승의 위안>

그동안 썼던 책방일지를 어떻게든 책으로 묶고 싶었던 것도 원고의 가치와는 상관없이 그 형태만이라도 완결짓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오래도록 보관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손에 잡히지 않는 온라인이 아니라 물성을 가진 책으로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입니다. 같은 책에 실린 글입니다. 닭살이 돋는 표현은 딱 질색입니다만... 제 마음도 저러하달까요..

"나도 가끔 한 권의 책이 되고 싶다. 이른 아침 강가로 햇살이 스며들 때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한 권의 책. 시집이면 더 좋겠다. 시집이 되어 사랑하는 여인의 책상 위에 놓여 봄햇살을 받고 싶다. 나를 넘기는 여인의 손가락과 눈빛의 향기를 마음껏 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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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의 위안(산문이 있는 풍경)

저자

정호승 지음

출판사

열림원 | 2003-12-17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한국 문단에서 깊이 있는 서정성으로 괄목할 만한 작품세계를 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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