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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48] 서가를 새로 들인 후 "분야별로 책이 꽂혀있지 않습니다.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라고 공지를 붙이고선 며칠째 계속 손을 놓고 있습니다. 책 옮기는 시늉이라도 내야하는데 보고 있자면 섣불리 손대기가 어렵군요. 헌책방은 들고나는 책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완벽하게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듯합니다. 책방을 운영하다보면 책방지기만의 노하우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요.
가장 이상적인 책방은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전문성을 살린 책방이겠죠. 문학, 역사, 철학, 여행, 음악, 미술, 사진, 어린이... 딱 한 가지 분야에 집중해 책을 구비하고 손님들과 모임도 하고 그런 책방이면 정리에 대한 부담도 많이 줄어들 것 같습니다. 현재 소소책방은 거의 잡화점(?)에 가까운 터라 전문성을 살리려면 한참은 더 내공을 쌓아야 할 듯싶습니다.
영화 <노팅힐>의 '노팅힐 북숍'(여행)이나 <유브 갓 메일>의 '길모퉁이 서점'(어린이) 같은 책방지기가 보기에 '이상적인 서점'이라고 해도 대형 서점을 이길 경쟁력이 생긴다거나 돈벌이와 이어지진 않겠죠.(영화 속에서도 다들 고전을 면치 못합니다.) 하지만, 작은 책방이라도 깊이를 갖춘 분야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책방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서가에 어떤 책을 둘 것인가, 어떤 분야의 책들에 가장 많은 서가를 할애할 것인가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는데 전진배치(?)하고 싶은 분야는 좋은 책이 많이 모자랍니다. 시간이 지나야만 해결이 될 문제군요.
책방지기 일 절반은 '서지書誌'라고 생각합니다. 몸을 부려 책을 정리하는 일도 있지만 책에 대해 분류하고 알아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역시 이 일도 끝이 없습니다. 책방을 그만둔다 해도 책을 가까이 하는 이상 끊임없이 붙들 수밖에 없겠죠.
장 그르니에는 독서와 서지 작업을 두고 '다나이드의 밑 빠진 독'이라고 했습니다. 다나이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나우스 왕의 마흔아홉 명의 딸들입니다. 남편을 죽이고 지옥에서 채워지지 않는 독에 물을 퍼나르는 형벌을 받았죠.
장 그르니에의 <일상적인 삶>(민음사)에 나오는 글입니다. '무슨 자격 취득 따위에 응모하려는 자'가 어떻게 생각하면 책방지기 처지와 다른 듯 비슷하군요.
"독서로 인해 길을 잃지 않는다 해도, 독서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서지 작업이 그러한 경우다. 한 주제와 관련된 모든 책들을 찾아보기, 그 출처들로 거슬러 오르기, 어떤 이론의 주변을 샅샅히 뒤지기, 그것들 사이의 관계 밝히기, 참고 서적의 목록을 쌓아올리기... 이런 일들이 바로, 무슨 자격 취득 따위에 응모하는 자들이 채우려 하는 다나이드의 밑 빠진 독이다."
* [사진]은 <유브 갓 메일>의 한 장면입니다. 정확한 책방 이름은 'The Shop Around the Corner'입니다. 길모퉁이 서점이라고 번역하는 편이 맛깔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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