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218] 책방에서 가장 빨리 판매되는 책을 꼽으면 시집이 단연 1위입니다. 보통 3천원 안팎으로 값이 저렴하니 부담없이 구입할 수 있어서겠죠. 특히 문학과지성사, 창작과비평사, 민음사에서 나온 시집들은 빨리 주인을 찾아갑니다.
출판사를 따지지 않고, 백석, 윤동주, 이상 시집도 인기있습니다. 좋은 시집을 구해오기가 힘들어서 부러 책방에 팔러오시지 않으면 새로운 시집을 가져다 놓기 어렵습니다. 눈 밝은 분들이 들어오면 바로 찾아가시니 가장 회전율(?)이 높은 책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책방에 있는 시집 가운데 팔지 않고 빼놓은 시집이 있습니다. 민음사에서 나온 <김수영 시선-거대한 뿌리>입니다. 초판도 아닌 중판이고, 새책도 워낙 저렴하게 판매되고 있으니 굳이 내놓을 필요가 없겠다 생각했죠. 오래 전에 신촌 공씨책방에서 구입했었죠. 가까이 두고서 가끔 꺼내 읽습니다. 유일하게 아끼는 시집이라고 해야겠군요.(사진에 보이는 <김수영 전집>은 판매합니다.)
김수영 시인의 시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먼 곳에서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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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다시 몸이 아프다
조용한 봄에서부터
조용한 봄으로
다시 내 몸이 아프다
여자에게서부터
여자에게로
능금꽃으로부터
능금꽃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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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해석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냥 절창이라 생각합니다. 읊조리면 가슴이 아릿합니다.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에서 박경리 선생님이 김수영 시인에 대해 평을 한 문장을 읽은 적 있습니다. 절창을 쓰기 위해선, 아니 시를 쓰기 위해선 먼저 맑은 영혼이 필요한거군요. 아마 글 쓰는 직업을 가진 이 가운데 가장 선한 사람들이 시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동백림 사건때, 푸른 수의를 입고 공판장에 나온 사람은 천상병 시인 혼자였습니다. 모두 흰 한복을 입고 나온 속에서 오로지 그 혼자만 이 죄수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 후 김수영 시인이 돈을 거둬서 옷을 지어넣고 영치금도 넣게 되었는데 모금에 참여했다 하여 박경리 동지라 쓰인 엽서를 김수영 시인으로부터 받은 적 있습니다. 돈을 쓴 내역에 대한 보고였습니다.
눈이 크고 키가 큰 김수영 시인도 (천상병 시인처럼) 천진한 아이였습니다. 그런 영혼들이 지금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들은 다 소천하고 말았지요. 여기서 우리는 다시 그들의 값어치를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들은 좋은 시를 남긴 시인이었을 뿐일까요? 가난하고 푸대접받았던 그들의 영혼이 그처럼 영롱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 저자
- 김수영 지음
- 출판사
- 민음사 | 2006-07-31 출간
- 카테고리
- 시/에세이
- 책소개
- 김수영의 시적 주제는 자유이다. 그러나 엘뤼아르처럼 자유를 그것...
- 저자
- 박경리 지음
- 출판사
- 현대문학 | 1997 출간
- 카테고리
- 시/에세이
- 책소개
- 박경리 강의노트 319페이지 1.문학 그것은 무엇인가 2.생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