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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영화 <문라이즈 킹덤>에서 가져왔습니다. 주인공 수지(카라 헤이워드)가 여행 가방에 소중한 책들을 넣고 친구 샘(지레드 길만)과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찾아가는 장면입니다. 책이 보이시죠? 책 읽는 장면은 찾을 수가 없군요.


[D+555] 도서정가제 시행 6개월이 지났는데, 전년도(2014년 5월 21일 - 11월 20일) 대비 판매권수가 17.6%, 매출액도 5.3%가 감소했다는 조사결과(예스24)가 나왔습니다. 그중 20대 독자의 구매가 큰 폭(-11.3%)으로 줄었고 60대 이상 독자만 시행 전 대비 2.1% 늘었습니다. 전체적으론 출판시장은 계속 줄어들고 있군요.

책을 사고 읽는 사람이 왜 갈수록 줄어들고 있을까... 고민합니다. 책방 일을 하고 있느니 그 고민이 더 깊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텐데요. 가장 큰 이유는 책값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라 생각했습니다.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지식과 즐거움을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결론을 내렸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보다 더 복잡한 문제가 깔려 있는 듯합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게 더 큰 이유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생존'을 위해 늦게까지 일할 수밖에 없는 경쟁 사회에선 저녁이 있는 삶을 찾는다는 건 사치에 가깝습니다. 주말도 바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특히 야근을 밥먹듯 해야하는 노동자들, 학교를 마치고도 학원을 뺑뺑이 돌아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책은 쉽게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예전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던 시절을 되돌아보면 독서가 쉽지 않더군요. 일이 아니더라고 저녁엔 무어 그리 약속이 자주 잡히는지. 책을 펴는 시간은 집에 돌아오고 한밤이 되어서야 가능할 때가 많았습니다.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오히려 독서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습니다. 쥐어짜듯 시간을 만들어야 했죠.

'책의 쇠퇴'는 다른 매체의 발전 때문이 아니라 삶의 속도가 바뀐 탓이 훨씬 크다 생각합니다. 공부를 위한 목적을 제외하면, 독서는 원래 한갓지고 느린 행위입니다. 책 한 권을 놓고 몇 날을 혹은 몇 달을 덮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어쩌면 복잡한 도시생활 자체가 독서와 어울리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60대 이상 독자가 늘어난 탓은 경제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사회생활에서 은퇴하고 독서를 위한 '절대시간'이 다른 연령대보다 많기 때문일 겁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까요.

피에르 쌍소는 자신의 책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청소년이나 중년의 남자가 손에 책을 들고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거나, 호숫가의 풀밭 위에 누워서 책을 훑어보고 있는 모습의 이미지에 대해, "구속과 평범한 일상사와 사회 생활에 대한 거부"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시골로 훌쩍 떠나 하루를 보내는 것과 책을 펼쳐드는 것은 똑같은 도피 행위이며, 똑같이 반항의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독서는 요즘같은 시대에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반사회적인 행위'로 분류될 수도 있겠군요. 책이 팔리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이런 '반항의 행동'에 너그럽지 않은 탓일까요. 계속 의문이 꼬리를 뭅니다. 같은 책에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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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 읽는 동안, 다른 사람들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집중 상태에 빠지는 것이 좋았다. 책 속에서 메시지를 걸러내고, 그것을 마음대로 수정해 보는 것도 즐겼다. 나만이 아는 곳에 숨어서, 혹은 나무 위로 올라가거나 다락방에 올라가서 책 속에 나와 있지 않은 장면들을 구성해 보곤 하였다. 그럴 때 우주는 침묵만 하고 있지 않고 나의 독서를 위해 웅장한 오케스트라를 연주해주었다.

비가 오면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고, 책 속에 쓰여진 단어들을 가지고 불을 지펴서 그 온기로 나를 녹이기도 했다. 내가 올라앉은 나무의 가지 하나가 부러지거나, 개나 고양이가 움직일 때 나는 소리들은 이 신비한 세계에 입체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저자
피에르 쌍소 지음
출판사
동문선 | 2000-06-2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크기: 12.5cm X 20.5cm / 231면상태: 별다른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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