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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584] 신경숙 씨는 미시마 유키오의 문장을 가져와 썼을까요? 소설가 이응준 씨가 주장한 '전설'의 표절 의혹은 제가 보기엔 충분히 납득할만합니다. 논란이 된 문장은 이응준 씨가 <허핑턴포스트>에 기고한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http://www.huffingtonpost.kr/eungjun-l…/story_b_7583798.html)이나 다른 언론사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으니 생략하겠습니다.

그런데 하필 표절 논란이 된 작품이 극우주의자였던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이었을까요. 독자가 아닌 창작의 주체인 작가라면 엄격한 잣대로 글을 읽고 써야하지 않을까요. 특히 일본 문학을 소비하고 차용할 때는 일반적인 엄격함 이상의 비판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박경리 선생님은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에서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오늘 역시 저질의 작가들이 일본 것을 모방하기는 하는 모양인데 그거야 물거품 같은 것이며, 언어 자체는 전달의 수단, 그러니까 엄격하게 알맹이와는 별개의 껍데기 같은 것이지요. 우리에게 있어서 일본어라는 것은 껍데기에 불과한 것, 오늘도 그러하지만 그때도 일본문학에서 우리가 취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신경숙 씨와 창비는 표절 의혹에 대해 '부인'했습니다. 몇 번의 표절 논란이 있었지만 예전에는 유야무야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독자들의 반응이나 논쟁의 강도가 예전과는 다른 듯합니다. 아무래도 SNS의 전파력이 이번 표절 의혹을 크게 확대하고 있고, 언론들도 큰 이슈로 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이응준 작가의 글을 단지 재탕하는데만 힘을 쏟고 있고, 이번 논란에 대해 명확한 분석을 내놓는 글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언론사마다 문학 담당 기자가 있을테고, 문단의 평론가들이 있을 텐데 온통 겉만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랄까요. 문단에서 신경숙 작가의 위치를 생각한다면 이번 표절 의혹을 논란으로 끝내선 곤란합니다. 흐지부지 넘어간다면 그렇지 않아도 소수 작가에게 집중되어 왜곡된 문학 출판시장이 거듭나긴 힘들다 생각합니다. 신경숙 씨의 소설을 좋아했던 독자들이 떨어져 나가면 그렇지 않아도 쭈그러든 국내 소설 시장은 더 불황으로 치닫겠지요. 명확하게 잘잘못을 가리고 거듭나는 기회로 삼아야지 않을까요.

이런저런 글을 찾아읽다 17일자 <연합뉴스>에서 한국작가회의 정우영 사무총장의 인터뷰를 읽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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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회의 정우영 사무총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이번 표절 논란으로 가장 충격을 받은 이는 작가 자신일 것"이라며 "당장 작가에게 비난의 화살과 답변을 추궁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총장은 "신 작가는 필사로 자신을 단련해온 작가로 알려져온 만큼 작가가 필사한 부분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표절에 이르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물론 그렇다고 해서 표절이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가 한국문학의 소중한 자산인만큼 충분한 해명의 기회를 주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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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를 한다고 해서 "무의식적으로 표절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있을까 스스로 질문을 던져봤지만, 제 경우엔 필사를 하면 오히려 더 명확하게 '타인의 문장'을 인식하게 되더군요. 필사를 하는 이유는 첫 번째가 아름다운 글맛을 보기 위함이요, 두 번째가 그 사람의 문장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인용의 정확성을 위해 따로 필사를 해두기도 합니다.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무의식적 표절'은 일어나기 힘들다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이번 표절 논란은 독자, 그리고 책방지기 처지에서 보기에 안타깝습니다. "재탕은 예술이 아니다"고 하셨던 박경리 선생님의 글을 마지막으로 옮깁니다.

"현실에서의 모든 대상은 그 하나하나가 미지의 세계입니다. 작가는 그 숲을 헤치고 들어가서, 그래도 만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추상적 대상을 만들어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소망이며 또 꿈이며, 미래입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으로 자기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자기 주변을 보아야 합니다. 재탕은 예술이 아닙니다. 천편일률적 틀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여러분은 아직 맑은 감성을 가지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정직하게 사물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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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

저자
박경리 지음
출판사
현대문학 | 1995-04-0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박경리 강의노트 319페이지 1.문학 그것은 무엇인가 2.생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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