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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일지

[D+311] 노란 불빛의 서점

sosobooks 2014. 9. 18. 12:28




[D+311] 지난 추석 큰 고모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큰 고모는 창원에서 작은 동네책방을 꾸리고 계십니다. 제가 헌책방을 열겠다고 했을 때 많은 걱정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말리지는 않으셨죠. 

실은 7월쯤 책방을 그만두어야겠다 생각하셨는데 아이들(사촌동생들)이 말려서 다시 마음을 되돌렸다 하셨습니다. 어려운 책방 살림을 돕겠다고 했답니다. 다행이다 싶습니다.

책읽는 습관은 부모님이나 가까운 이에게 물려받거나 영향을 받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와 고모들께 많은 영향을 받았죠.(책방지기를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만.) 

책에 둘러싸여 사는 책방지기임에도 책을 선물로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물받은 책들은 어떻게든 읽어보려 노력합니다. 책방에서 공연했던 이내씨가 선물로 건넨 <노란 불빛의 서점>(문학동네)을 책상 위에 올려만 놓고 있다가 어제서야 모두 읽었습니다.(이내씨 감사!)

책방에서 10년, 출판사 외판원으로 7년... 오랜 세월 책과 함께 보낸 저자 루이스 버지비 씨의 이야기가 재밌기도 하고 공감되는 내용도 많았습니다. 책을 손에 들고 그 자리에서 마지막 장까지 넘겼습니다. 그 사이 손님은 한 분도 오시지 않았다는... 슬픈 이야기가. 

"헌책방은 실로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왔다. 바로 그 연속성이 이집트인들의 목욕장을 데우는 불쏘시개가 되고 말았을지도 모를 책들을 살려내고 지금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헌책방들은 최선의 재활용, 즉 우리의 문화적, 물질적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노력을 상징한다."

'이집트인들의 목욕장 불쏘시개'는 642년 칼리프 오마르에 의해 알렉산드리아가 함락되고 세상에 필요한 책은 <코란> 뿐이라는 그의 결정에 따라 당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있던 장서들이 목욕탕 불쏘시개로 사용된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그 비극의 와중에 책장수들이 불태워질 책들을 구하는 역할을 하죠. 

현장에서 일한 저자답게 정확하게 '느긋한' 책방지기 생활을 꿰뚫고 있습니다.

"서점은 다른 가게들과 달리 시간이나 공간 따위에 개의치 않는다. 크게 문제될 게 없기 때문이다. 서적상들 대부분은 책을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이 직업에 뛰어드는데, 그래도 일을 하다보면 장사치로서의 삶에 점차 기울어지게 마련이다. 책은 경제 법칙이 간신히 통할 정도로 값이 저렴해서 그리 이문이 남지 않는다. 

(중략)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서적상이 최저임금 수준의 수입밖에 챙겨가질 못한다. 다른 세계에서는 시간이 돈일지 몰라도 서점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시간이 간다고 돈 들 일은 없으므로 얼마든지 느긋해질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첫 장에 실린 빈센트 반 고흐의 문장을 옮깁니다. 동생 테오와 주고 받던 편지 속 문장일까요? 노랗게 물든 서점은 고갱과 함께 지냈던 아를에 있는 걸까요?

"언젠가 저녁 무렵 노랗게 물든 서점을 그려봐야겠다고, 나는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어둠속 영롱한 빛 같은 풍경을."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노란 책'입니다.




노란 불빛의 서점

저자
루이스 버즈비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9-06-0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서점, 마음은 뜨겁게 불타오르는데 몸은 조용히 가라앉는 그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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