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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일지

[D+309] 사랑하는 문고판

sosobooks 2014. 9. 16. 12:32


[사진]은 나다르가 촬영한 알퐁스 도데(1840~1897)의 초상입니다. 미남자군요.


[D+309] 안타깝게도 책방지기가 좋아하지만 책방 문 닫을 때까지 주인을 찾지 못하고 저와 함께 있을 것 같은 책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오래된 문고판들인데 앞에도 여러 번 썼지만 저는 문고판을 '지극히' 사랑합니다. 무엇보다 책값이 저렴해 부담없고, 작아서 가지고 다니기 편하고, 서가 자리도 많이 차지하지 않고, 선물하기도 좋습니다. 그리고 속독하는 맛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두꺼운 책을 쉬이 읽기 힘든 것은 부피가 주는 압박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고판이야말로 마음 편하게 독서의 참맛을 느끼게 하는 귀한 존재입니다. 출판사나 책방 입장에선 그리 남는 것이 없지만요.

신문사에서도 문고판을 낼 정도로 전성시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문고판을 내는 출판사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다른 책방에 갈 일이 있으면 좋은 문고판은 꼭 구입해서 오는 편이지만 책방에서 팔리는 경우는 드뭅니다. 소소책방만의 일일 수도 있겠군요.

사노 신이치의 <누가 책을 죽이는가>(시아출판사)에 보면 기타큐슈시에 '헌 문고책방 주인'이라는 책방이 있다고 합니다.(책방 이름에 '주인'이 들어있군요.) 책방지기인 다니구치 마사오씨는 15년 동안 문고판만 40만권을 수집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가장 많은 문고판을 소장하고 야에스 북센터조차 10만권 밖에 없다니 그의 노력과 열정이 존경스럽습니다. 마사오씨의 말입니다. 언젠가 그의 책방에 꼭 가보고 싶군요.

"문고본은 이와나미나 주오코론샤에서 나온 것을 제외하면 헌책방에서조차도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고는 일본이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으로, 결코 읽고 버려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 모든 발행 종수 약 40만 종을 망라하는 500만 권을 모으고 문고 전문 도서관을 만든다는 게 20년 후 나의 꿈입니다."

제 책상 옆에 문고판 자리가 있는데 예전 삼중당에서 나온 베스트문고 시리즈가 몇 권 있습니다. 그 가운데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 · 별>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읽었을 작품이지요. '단돈' 1,500원이 14년 전 정가인데 보통 천 원쯤에 팝니다. 얼마 전 <어린 왕자>를 천 원 받고 배달(?)했던 적도 있습니다.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책이라 이 책을 팔아 얼마가 남는 지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하하.

<마지막 수업 · 별>에는 마지막 수업과 별 이외에도 모두 31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그 가운데 '마지막 책'이란 작품도 있죠. 거기에는 세상을 떠난 작가의 유작이 책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소멸과 탄생이 완벽히 교차하는 장면입니다.

"이 책은 마침내 서점의 진열장에 모습을 나타내고 거리의 소음과 일상의 활동에 가담하려는 찰나이다. 그리고 지나가는 행인들은 책의 제목을 기계적으로 읽고, 그것을 저자명과 함께 눈 속의 깊은 기억 속으로 가져갈 것이다. 밝은 색 표지 위에서 화려하게 미소 짓던 그 이름은 구청의 호적등본에서도 서글프게 확인되리라. 

이제 곧 매장되어 잊혀져 갈 이 굳은 시체와, 아마도 불멸의 영혼처럼 그에게서 빠져나와 눈앞에 생생히 살아 있는 이 책 사이에는 영혼과 육체와의 문제가 그대로 숨쉬고 있는 듯이 느껴진다."




누가 책을 죽이는가

저자
사노 신이치 지음
출판사
시아출판사 | 2002-02-0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지금까지 출판계의 상황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한 글과 논의들은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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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퐁스 도데 단편선

저자
알퐁스 도데 지음
출판사
문예출판사 | 2006-09-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날카로운 풍자와 짙은 인간미가 흐르는 서정적인 글로써 시적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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