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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63] 얼마 전 진주교대 앞에 있던 큰바위서점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일여고 사거리에 있던 학문서점 자리도 휴대폰 가게로 바뀌었더군요. 진주도 책방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가혹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동네책방을 무조건 살려야한다고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책방이 다른 공간보다 더 특별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책방이 없다고 불편을 느끼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책방이 어느 정도는 공익의 가치를 지닌 곳이긴 하지만 결국 자본의 논리에 얽매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익이 나지 않으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기없는 상품인 책을 취급하는 이상 돈에 초연(?)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이미 책방을 열기 전부터 깨닫고 있었죠. 

조만간 펴낼 잡지에 '대책없는 책방창업기'를 통해 더 상세하게 쓰겠지만 책방을 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책과 책방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뭔가 거창한 목표나 영업 전략따윈 없습니다. 가늘고 질기게 버티는 수밖에요.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합니다만 이익을 많이 남겨야 더 좋은 책을 가지고 올 수 있으니 그게 단 한 가지 고민이긴 합니다. 완전히 흰머리가 내려앉고 눈이 침침해질 때까지 책방지기로 살고 싶군요.

아래는 지난 해 여행 갔을 때 태국 방콕 다사북카페[사진]에 갔다 남겼던 일기입니다. 며칠 전 제 페북에 옮겼던 것을 다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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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마지막에는 몸피를 줄이고 줄여 아마 15평쯤 되는 좁고 긴 꼴을 한 낡은 책방에서 하루를 보낼 것이다. 나무바닥은 내 몸처럼 가끔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고, 지독히 사랑하지만 팔리지 않는 책들은 세월의 더께 만큼 쿰쿰한 냄새를 풍기겠지. 가끔, 오랫동안, 잊지 않고 오는 손님과 묵은 이야기를 하고, 없거나 구하지 못한 책들에 대한 불만을 들을 테다. 

책방 맨 구석에 길이 180센티미터, 폭이 80센티미터인 책상 두 개를 ㄱ자로 붙여놓고 오른쪽 면에는 문고판으로 가득 채운 낮은 책꽂이 하나를 두어야지. 종일 읽고 싶은 책을 보다 해가 지면 마음에 드는 문장 한 구절 옮겨쓰고, 집으로 돌아갈 때 침대 머리맡에서 읽을 책 한 권 가방에 넣을 테다. 

읽어도 더는 나아가는 것이 보이지 않으면 책을 놓고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의 경고를 떠올리며, 철없다 지청구하는 아내에게 건넬 실없는 농담을 골똘히 궁리하겠지. 아마 그렇게 되겠지.

"지나치게 읽는 정신은 양분을 공급받기는커녕 오히려 둔해지며, 서서히 성찰하고 집중하는 힘을 잃어버려 결국에는 산출하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면, 정신은 내면을 향해 점점 더 외향적이 되고, 밀물 썰물처럼 흐르는 관념과 내면의 이미지에 열렬히 집중하며 그것들의 노예가 된다. 

이렇게 무절제한 기쁨에 몰두하는 것은 자신에게서 도피하는 것이다. 그 기쁨은 지성의 기능을 빼앗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사유를 하나하나 따라가는 것 혹은 단어, 문단, 장, 책으로 이어지는 흐름에 실려가는 것만을 허락한다." - <공부하는 삶>

[공지] 8월에는 주말, 광복절에 책방 문을 열지 않습니다. 책방지기의 호연지기가 바닥나 충전하러 다녀야겠습니다. 밤샘책방은 그대로 합니다.



공부하는 삶

저자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지음
출판사
유유 | 2013-02-04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배우고 때로 읽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하랴?"공자가 [논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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