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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59] 손님이 찾으셔도 책이 어딨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책방을 열 때 용인 세진서점에서 가져온 책들을 아직 풀어보지도 못한 탓도 있습니다. 


이리저리 책을 찾아보다 뜻밖에 반가운 책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분도 출판사에서 나온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이 눈에 띄어 풀었는데 그 사이 박경리 선생님의 시집 <못 떠나는 배>가 나왔습니다. 1988년 지식산업사에서 나왔는데 <도시의 고양이들>, <우리들의 시간>과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까지 포함하면 선생님의 시집은 4권입니다.


마흔넷에 <토지>를 쓰기 시작해 1994년 예순아홉에 마지막 장을 탈고할 때까지 매달릴 수 밖에 없었던 선생님이 이 시집을 낸 시기는 <월간경향>에 연재하던 <토지> 4부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때인 듯합니다. <월간경향>은 1989년 2월호를 마지막으로 휴간되었는데 회사 사정이 어려워진 것이 연재를 중단한 이유였을 테지요.


시집의 머리말에는 <토지>에 대한 선생님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20년 가까이 한 작품에 매달려 오늘 이 지점에까지 왔는데, 20년 가까운 세월의 의미를 모르겠고 <토지>는 내게 있어 무엇이었을까. 과연 앞으로 헤쳐나갈 힘은? 남아 있는 걸까. 새삼스런 자문은 아니다.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도 새삼스런 일은 물론 아니다."


5부 16권의 이야기를 마치기까지 26년의 긴 시간동안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야 했던 선생님에겐 <토지>가 가끔 천형天刑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요.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에서 선생님은 "유한마담의 보석반지처럼 문학을 생각해도 안 되고 난장판에서 떨이를 외쳐대는 장사꾼 같은 문인들이 있어서도 안 될 것"이라고 꾸짖습니다. 문학을 처세의 수단이나 상품으로 생각하는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셨겠지요. 그렇다면 '소설을 쓰는 작가'란 어떤 사람일까요.


"모든 생명은 총체로서의 개체이며 총체는 개체로서 이루어지고 고리사슬에 엮어진 존재일 것입니다. 소설을 쓰는 작가는 고리사슬을 물어 끊으려는 모반자인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고리사슬이 풀릴 것을 두려워하여 합일을 치열하게 소망하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반역의 욕구와 개체에 대한 두려움에 보다 예민한 사람이라 해야 옳겠지요. 반역과 충성, 자유와 의무는 모순이며 영원한 갈등인 탄생과 죽음처럼, 빛과 어둠처럼, 원심과 구심처럼, 인간의, 생명의 원초적인 것이니까요."


그리고 선생님은 글을 쓰려는 이들에게 "고독하라" 조언합니다.


"고독하지 않고서 사물을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고독은 즉 사고니까요. 사고는 창조의 틀이며 본입니다"


<토지>와 선생님의 다른 수많은 작품들은 깊은 고독의 결과물이라 생각합니다. 번잡하고 분주한 사람에게 창작의 에너지가 있을 리 없겠지요. <못 떠나는 배>에서 옮깁니다. 고독과 그리움, 그 감정의 사이를 파고드는 '불행'을 작가는 피해갈 수 없는 걸까요.


'불행'


사람들이 가고 나면

언제나 신열이 난다

도끼로 장작 패듯

머리통은 빠개지고 갈라진다


사무치게 

사람이 그리운데

순간 순간 눈빛에서 배신을 보고

순간 순간 손끝에서 욕심을 보고

순간 순간 웃음에서 낯설음을 본다


해벽海壁에 부딪쳐 죽은

도요새의 넋이여 그리움이여

나의 불행



[공지] 11월, 주말에는 책방 쉽니다. 11월 11일 책방 연 지 1년 되는 날도 쉽니다. 



못떠나는 배

저자
박경리 지음
출판사
지식산업사 | 1988-05-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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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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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현대문학 | 1997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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