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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75] "스무 살에 눈물을 쏙 빼놓던 소설에 이제는 미소만 지을 뿐이라도, 너무 서둘러 그 책이 조악한 것이었고 나 자신이 스무 살 때 착각했다고 결론짓지 마라. 그저 이렇게 말해라. 그 책이 그때 그 나이의 당신을 위해 쓰였던 것일지언정 현재 나이의 당신이 그 책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어제 에밀 파게의 글을 읽으며 중국 청나라 시대의 문장가 장조張潮 <유몽영幽夢影>이 생각났습니다. 장조는 "젊은 시절의 독서는 틈 사이로 달을 엿보는 것과 같고, 중년의 독서는 뜰 가운데에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으며, 노년의 독서는 누각 위에서 달을 구경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똑같은 책, 문장을 놓고도 나이와 경험, 지식에 따라 해석과 받아들임이 다를 수밖에 없겠죠. 

그는 인생에서 열 가지 한스러운 것 중 "책이 좀 먹는 일"이 첫 번째라고 할 만큼 책을 아끼는 이였었습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그에게 가장 즐거운 일은 독서가 아니었을까요. <유몽영>에는 책 읽기에 대한 이야기가 꽤 많이 나옵니다. 봄에는 문집, 여름에는 역사서, 가을에는 제자백가, 겨울에는 경서를 읽는 것이 좋다고 했죠.

<유몽영>은 두 가지 번역본이 있는데, 정민 선생님의 번역본만 보았습니다. 어떤 책이 낫다고 말씀드리기 힘들군요. 정민 선생님 번역본은 <내가 사랑하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태학사에서 나왔습니다. <유몽영>의 존재를 린위탕(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을 읽고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도 한번 언급했었는데, 젊은 시절 읽었던 <생활의 발견>은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책이더군요. 그런데 마흔 쯤되어 다시 읽고 보니 그 맛이 달랐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맹물이었다면 지금은 고로쇠 수액같은 맛이 난달까요. 책의 진가는 나이와 경험, 지식 뿐만 아니라 장소, 시간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유몽영>에서 제가 좋아하는 문장입니다.

"풍류를 혼자 누리되 다만 꽃과 새가 따라와 함께 하는 것을 용납한다.
진솔함을 누가 알아주랴만 안개 노을의 공양은 받을 만하다."

[사진]은 중국 시안에서 찍었습니다. 손님이 오든 말든 책장수 아저씨는 독서삼매경에 빠져 계시더군요. 주말에는 책방 쉽니다.



내가 사랑하는 삶(태학산문선 111)

저자
장조 외 지음
출판사
태학사 | 2001-03-14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청나라 초기의 소품가 장조의 유몽영과 청나라 말 주석수의 유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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