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12] 오에 겐자부로의 '말의 정의定義'

[D+412] 주말 동안 한 발짝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주말 동안 한 일은 방학 맞은 아이들을 위해 카레를 한솥 끓이고, 대청소를 하고, 오에 겐자부로의 <말의 정의定義>(뮤진트리)를 읽은 게 전부입니다. 책방에서도 독서가 가능하지만 집중하기가 힘듭니다. 집에 있는 주말에도 온전하게 책읽는 시간을 내긴 힘듭니다. 역시 모두 잠든 밤이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군요.

오래 전 일인데, 고려원에서 나왔던 오에 겐자부로 소설전집을 사서 모았던 적 있습니다. 10권 남짓 서가에 꽂아두고, 꼭 전집을 채우겠다 전의(?)를 불태웠습니다. 그런데 이사하며 정말 이상하게도... 딱 오에 겐자부로 전집을 싼 보퉁이만 사라져버렸었죠. 지금은 여러 출판사에서 그의 작품이 번역되어 나오지만 다시 '전집'으로 출간되긴 힘들지 않을까요. 아쉽게도 고려원 전집은 그때보다 값도 많이 뛰었습니다.

그의 작품 중에 <개인적 체험>은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한 인간이 아버지로 성장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달음을 준 작품이었죠.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되지 않았고, 직장 때문에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있던 때라 더 깊은 울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에 겐자부로의 장남 히카리는 선천적 뇌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개인적 체험>은 아들을 수술시키기 전까지 겪었던 자신의 '체험'을 소설로 썼습니다.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없은 아이의 죽음을 바라는 아버지의 방황과 일탈... 그리고 깨달음은 작가 자신이 겪은 일이기에 더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길렀던 경험을 글로 옮긴 펄 벅의 <자라지 않는 아이>(샘터), 마사 베크의 <아담을 기다리며>(녹색평론사)보다 <개인적 체험>이 더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것은 아마 '소설'을 통한 자기 고백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단순한 경험을 옮긴 에세이보다 이야기를 통해 갈등과 번민을 더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는 <말의 정의>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정의에 대하여. 저는 젊었을 때 발표한 소설에, 장애를 갖고 성장해가는 장남을 위해 세계의 모든 것을 정의定義해주겠다는 '덧없는 꿈'을 썼습니다. 그 꿈을 이룰 수 없었지만, 지금도 뭔가에 대해 그가 이해하고 또 웃어줄 것 같은 사물의 정의를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사육>으로 스물셋의 젊은 나이에 최연소로 아쿠타가와 상을 받고 모교인 도쿄대 교수가 되려했던 전도 유망한 작가에게 장애를 가진 '히카리'는 말 그대로 빛이 아니었을까요. 세상을 새로운 시선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끈 빛, 말이죠. 

오에 겐자부로는 장애인 문제에 대해 평생 관심을 가지고, 반전반핵을 주장하고,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실천적 지식인입니다.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은 단순히 작품의 성과 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인류애에 천착한 그의 노력이 바탕에 깔려있습니다.

<말의 정의>에서 책갈피를 끼워둔 곳입니다. '지적이고 조용한 슬픔의 표현' 장에 나오는 글입니다. 평생 책을 사랑한 작가의 면모가 그대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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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합장한 두 손바닥의 부드럽고 가지런한 손가락, 두 손바닥 사이로 정면에서만 보이는 작은 간극으로 빨려드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반 발짝쯤 움직여 다시 한 번 올려다본 정면의 섬세한 젊은이의 울굴 윤곽(도쿄국립박물관에서 본 아수라 상)이 묵직한 안정감을 주는 데서도 제 몸 전체가 통째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밤에 (40여 년전 구입한, 당시 아내와 의논하여 정해놓은 월 도서비의 40퍼센트를 차지했던) <고후쿠지 1, 2>를 책상 가득 펼쳐놓고 떠올린 것은, 평생 단 한 번 교토의 절에 동행한 어머니가 한 말이었습니다.

"너는 부처님 앞에서도 멈춰 서지 않는구나. 학생 때도 책을 읽는 것이 (사전을 찾으며 읽었으므로) 옆에서 보고 있으면 수선스러울 정도고... 그게 그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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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문학과지성사에서 번역 출간한 <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하다> 원서 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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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정의

저자

오에 겐자부로 지음

출판사

뮤진트리 | 2014-03-1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시대의 위기에 대해, 평생 동안 수련해온 소설의 언어로 자신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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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체험(오에겐자부로소설문학전집6)

저자

오에 겐자부로 지음

출판사

고려원 | 1997-02-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장편소설. 장애를 안고 태어 나는 첫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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