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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일지

[D+408] 만년필 필사의 즐거움

sosobooks 2014. 12. 24. 14:18




[D+408] 읽기도 즐겁지만, 좋은 글을 옮겨 쓰는 일도 또 그만한 재미가 있습니다. 만년필로 옛글을 필사하는 하는 일은 꽤 오래된 취미입니다. 만년필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매우 경제적(?)인 취미생활일 뿐만 아니라 마음을 가라앉히는데도 특효약입니다.

10년쯤 된 라미 사파리 만년필을 펜촉을 갈아가며 쓰고 있는데 어디라도 빼놓고 가면 아쉬울 정도로 정이 들었습니다. 만년필은 꽤나 귀찮은 필기구입니다. 처음에는 길들이기를 잘 해야합니다. 거기다 조금이라도 방치하거나 하면 잉크가 마르기 십상입니다. 손가락에 잉크가 묻는 일이 다반사구요.

만년필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박종진 님이 쓴 <만년필입니다!>(엘빅미디어)를 추천합니다. 만년필의 역사부터 올바른 사용법, 브랜드 소개까지 꼼꼼하게 만년필 입문자를 배려해 쓴 책입니다. 처음부터 비싼 만년필을 구입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깊은 밤 책상 위에 만년필과 노트만 올려두고 사각대며 좋아하는 작가의 아름다운 문장을 필사하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필사는 암기와 더불어 독서의 가장 지극한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천천히 읽으며, 오자 탈자없이 한 쪽 깨끗이 필사하면 그만큼 작가의 문장에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입니다.

소주컵에 따뜻한 물을 담아 묵은 잉크 때를 빼곤, 김광균 시인의 '설야'와 백석의 '국수'를 옮겨 적었습니다. 때를 빼고나면 처음엔 [사진]처럼 희미하게 나오죠. 이 밤에 국수 생각이 나는군요. 하하. 민병일 님의 <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아우라)에서 옮깁니다.

.......

미지근한 물에 펜촉을 담가두자 해묵은 잉크 때가 앉은 펜촉에서 먹물이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검푸른 잉크는 물에 용해되며 자신을 해체했다. 만년필 몸 안에 흡착된 잉크 찌꺼기는 활자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나는 만년필 속에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가 살고 있다고 믿는다.

여신은 만년필을 쥔 인간의 뇌에 기억을 심어주었고 전이된 상상력은 심장에 짙은 우수를 불러일으켰다. 잉크는 파우스트에게 영혼을 팔게 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분신이다. 나와 끊임없이 투쟁하며 영혼을 파라고 하는 잉크. 만년필이 고독한 것은 결코 지울 수 없는 메피스토펠레스가 남긴 흔적 때문일 것이다.

*크리스마스엔 책방 쉽니다. 모두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길.



만년필입니다

저자
박종진 지음
출판사
엘빅미디어 | 2013-11-3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이 책은 번역서조차 한 권 없는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소개하는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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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

저자
민병일 지음
출판사
아우라 | 2011-02-21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오래되었지만 애착이 가는 물건이 있고 이 물건을 애써 모으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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