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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김호석 님(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이 그린 다산 선생의 유상遺像입니다.


[D+444] 가장 최근 읽은 책은 <다산의 한평생>(창비)입니다. 후손 정규영이 1921년 펴낸 <사암선생연보>를 송재소 님이 풀었습니다. 사암은 정약용의 또다른 호입니다. 다산이 태어난 1972년(영조 38년)부터 세상을 떠난 1836년(헌종 2년)까지의 기록과 사후인 1910년(융희 4) 문도공 시호를 받을 일까지 담았습니다.

평생 500여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긴 대학자의 연보답게 놀라움으로 가득합니다. 지금껏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창비)나 <목민심서>(현암사), <다산선생 지식경영법>(김영사) 정도만 눈으로 읽었을 뿐입니다. 범부의 눈으로 보기엔 평생을 써도 그의 저작을 읽고 공부하는데도 모자랄 듯합니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에서 공부하고 정리하고 책으로 묶는 방법으로 '다산치학 10강 50목'이 소개되어 있는데 새겨둘만 했습니다. <다산의 한평생>을 읽다가 꼭 소개하고픈 대목이 있어서 표시를 해두었습니다. 1987년(정조 11년) 다산이 26세 때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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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성균관의 시험에서 비교함에 고등을 차지했다. 임금이 중희당으로 입대하라고 하여 들어가니, 석류나무 아래 앉아라고 하였다. 임금이 물었다. "너는 <팔자백선>을 얻었는가?" "얻었습니다." "<대전통편>을 얻었는가?" "얻었습니다." "<국조보감>도 얻었는가?" "얻었습니다." 임금이 말하기를 "근일 내각(규장각)에서 인쇄한 서책을 네가 모두 얻었으니 내가 줄 책이 없구나"하고, 크게 웃은 다음 곁에 있던 신하를 돌아보고 "술을 가져오느라"하였다. 계당주를 큰 사발에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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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다산을 아끼는 법이 이와 같았습니다. 젊은 다산은 과시가 있을 때마다 글이 뽑혔고, 그때마다 정조는 책과 붓과 종이를 내립니다. 크게 쓸 인물임을 알고 어떻게든 전문지식을 익히게끔 배려하는 정조의 책 선물공세(?)가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계속 우등으로 뽑히는 다산이 주변의 시샘으로 화를 입지 않을까 미리 경계하기도 합니다. 그해 12월 반제에 뽑혔으나 일부러 낮은 등급을 줍니다. 그리곤 정조는 다산에게 "여러 번 응시하여 여러 번 수석을 차지하니, 꽃은 찬란히 피어나지만 열매를 맺지 못할까 염려된다. 이 때문에 꽃을 거두고자 할 따름이다."고 말합니다. 정치가로서 정조의 노련함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스승으로서의 면모도 보입니다.

'계당주 큰 사발'이 중희당으로 들어온 다음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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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못 마신다고 극구 사양하였으나, 임금이 명하여 다 마셨다. 술에 몹시 취해 비틀거리니 임금이 내시감에게 부축해 나가라 명하고, 조금 있다가 빈청에 머무르라고 하였다. 잠시 후 승지 홍인호가 소매 속에서 책 한권을 꺼내 은밀히 건네주면서 "네가 장수의 재주도 겸비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특별히 이 책을 내려준다. 훗날 동철과 같은 도적이 있으면 너를 기용하여 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는 임금의 교지를 전해주었다. 돌아와서 보니 <병학통>(정조의 명으로 장지항 등이 펴낸 군사학 교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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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술에 취하게 만들어 놓고 몰래 책을 전하는 정조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아랫 사람을 큰 재목으로 쓰기 위해 미리부터 단련케 하는 그 마음 속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도 깔려 있지 않았을까요. 이인화의 소설 <영원한 제국>(세계사) 한 페이지를 다시 읽는 느낌입니다.

아마 다산이 평생 그 많은 저술을 남길 수 있었던 바탕에는 스스로 뼈를 깎는 노력과 정진도 있었겠지만, 정조의 아낌없는 지원도 많은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궁합(?) 맞는 윗사람을 만나기란 현실에선 참 힘들죠. 한 사람의 연보가 이렇게 재밌는 까닭은 생전 다산이 꼼꼼하게 자신의 연보와 행장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역시 기록보다 강한 것은 없군요.



다산의 한평생

저자
정규영 지음
출판사
창비 | 2014-11-2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최초로 완역된 ‘다산 연보’의 결정판! 다산의 현손(玄孫)이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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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현암신서 3)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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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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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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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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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제국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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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독살설'을 다룬 우리 시대 최고의 소설, [영원한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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