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43] 메모가 없다면 우리에게 책은 없다

[사진]은 위에서 차례대로 영화 <러브레터> 대출 카드, 독일작가 아르노 슈미트, 임종국 선생님의 메모 카드입니다

[D+443] 책방 한쪽에 오래된 도서관 카드함이 있습니다. 이 카드함을 구입한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8년쯤 전 집 근처 중고가구점을 지나다 발견하곤 두 개 중 하나를 데려왔죠. 배달료를 아끼기 위해 분리해서 세 번에 나눠 짊어지고 왔던 기억이 납니다. 색인카드는 모두 없고 서랍 안에 카드를 고정하는 고정쇠는 그대로였습니다. 고정쇠가 있는 상태론 사용하기 힘들어 제거하곤 서랍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도서관 책 정리를 모두 컴퓨터로 하지만 예전엔 색인 카드로 했습니다. 책을 찾으려면 먼저 도서관 카드함의 색인 카드를 뒤지는게 먼저였죠. 제가 대학에 입학했던 1993년도만 해도 도서관 카드함이 있었습니다. 벌써 20년이 넘었군요. 색인 카드에서 찾는 책이 있는 서가 위치를 확인하고 빌려가려면 대출 카드를 기록해야했습니다. 

개봉한 지 20년이 된 영화 <러브레터>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군요. 대출카드에 남자 주인공 후지이 이츠키가 여자 주인공 후지이 이츠키의 초상을 그린(그림을 이와이 순지 감독이 직접 그렸다더군요), 이런 낭만을 요즘 도서관에선 경험하기 힘들겠죠. 대출 카드를 작성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러브레터>를 국내에서 드라마로 리메이크 할수도 있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도서관 장면들은 어떻게 바뀔까 상상이 가질 않는군요. 대출카드가 아니라 스캐너로 찍고 컴퓨터 화면으로 확인하는 장면으로 하자면 뭔가 삭막합니다. 주인공이 사서니 <러브레터>에 도서관 장면이 빠지면 심심하겠죠.

예전에는 도서관 색인 카드와 비슷한 구멍뚫린 메모 카드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학생들은 주로 단어장이나 수학공식 암기장으로 애용했죠. 한때 책에 나오는 문장들을 옮겨 적기도 했었는데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앤드루 파이퍼의 <그곳에 책이 있었다>(책읽는수요일)에는 1977년 세상을 떠난 <롤리타>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바코프가 남긴 구멍뚫린 메모 카드를 모아 2008년 출간된 미완성 소설 <오리지널 오브 로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지난해 문학동네에서 번역 출간되었는데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일제강점기 친일문제에 대해 평생 연구하셨던 임종국 선생님의 1만3천여 장의 메모카드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친일파인물사전>이나 <친일문학론>은 선생님의 카드가 바탕이 되었습니다. 임종국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애국자의 탈을 쓴 친일부역자들을 가려내지 못했겠지요. 선생님은 <일제 침략과 친일파> 서문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영광의 기록만이 역사는 아니다. 3.1의 함성이 무성한 여름이라면 친일은 참담한 동면이다. 동면기를 모르고 건국이라는 맹아기를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친일은 결코 은폐의 대상일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책은 작은 메모에서 시작합니다. 색인으로 틀을 짭니다. 도서관 카드함을 비우다 내가 색인을 나누고 기록할 수 있는건 무엇일까 잠시 고민해봤습니다. 책으로 묶이지 않더라도 말이죠. <그곳에 책이 있었다>에서 옮깁니다. <오리지널 오브 로라>에 대한 내용입니다.

"작가의 메모 카드가 책 형태로 애정 넘치게 다시 만들어진 <오리지널 오브 로라>는 시각의 측면과 촉각의 측면 모두에서 소위 형태학적 매체론 - 메모가 책이 될 수 있다는 점, 사실상 이 두가지의 매우 다른 쓰기 형태(색인 카드의 저렴함과 책의 웅대함)가 서로 같은 것을 의미할 수 있다는 점-을 책으로 구현했다.

그러나 그 메모 카드의 천공-소위 후기 인쇄 시대의 가장 탁월한 형태들 중 하나-을 통해서, 책에서 메모를 떼어낼 수 있다는 점은 책의 구멍에 주목하기도 했다. 그것은 메모였다. 그래서 <오리지널 오브 로라>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메모가 없다면, 우리에게 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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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책이 있었다

저자

앤드루 파이퍼 지음

출판사

책읽는수요일 | 2014-07-3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책은 과연 얼마나 더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을까? 도발적인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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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오브 로라

저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03-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오리지널 오브 로라] 는 소설이 아니다. 밀로의 비너스처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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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국 평전

저자

정운현 지음

출판사

시대의창 | 2013-12-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임종국 선생의 생애와 저술 활동, 사상에 대한 총체적 해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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