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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52] 동훈서점에 들렀다가 반가운 책을 구했습니다. '디런지에' 시리즈의 저자인 로베르트 반 훌릭의 <중국성풍속사>(원제 : Sexual Life in Ancient China)(까치)입니다. 

당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명재상 디런지에가 주인공인 로베르트 반 훌릭의 추리소설 <쇠못 살인자>, <쇠종 살인자>, <황금 살인자>, <호수 살인자>는 황금가지에서 나왔습니다. 영화 <적인걸>의 원작으로 더 잘 알려져 있죠. 2010년 <적인걸>이 개봉되었을 때 세트 상품으로 묶여 나온 적 있습니다.

로베르트 반 훌릭은 직업 외교관이었지만 소설가로 학자로도 명성을 쌓았습니다. <중국성풍속사>는 1993년 번역출간되었는데 지금은 아쉽게도 절판된 상태입니다.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서문에 나오는데, 그가 주일 네덜란드 참사관으로 일할 당시(1949년) 골동품 가게에서 중국 명대 성애화를 모아 엮은 책 <화영금진花營錦陣>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화영금진>을 단순한 '도색서적桃色書籍'으로 보지 않고 학문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해설을 덧붙여 <중국성풍속사>를 펴냅니다.

"이러한 화집은 오늘날 매우 희귀할 뿐만 아니라 예술적, 사회적 관점에서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자료를 다른 연구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중국성풍속사>는 성性을 토대로 역사, 문화, 종교, 경제, 미술, 문학을 아우릅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네덜란드인인 그가 어떻게 자료를 수집하고 해석했는지 놀라울 정도입니다. <쇠못 살인자>에서 칠교놀이를 중요한 단서로 쓴 것을 보고 감탄했었는데 평소에도 굉장히 사소한 것에도 관심을 갖고 기록을 꼼꼼하게 하는 이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직업 외교관이었지만 동양문화에 대한 깊고 해박한 지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아시아를 여행하고 라이덴 대학에서 산스크리트어, 중국어, 일본어를 공부했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동양에 대한 지식을 넓힌 것이 이 책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오랜 외교관 생활은 학문적 지식을 객관화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겠지요. 책을 구입해오자마자 묵을 때를 벗기고 연필로 밑줄 친 부분을 지우며 훑어보았습니다. 성풍속사를 다루고 있지만 야하다 싶은 그림의 손에 꼽을 정도라 실망(?)스럽군요. 하하. 

그런데 페이지를 넘기다 송대 학자였던 조명성과 그의 아내 이청조에 대한 이야기에 눈이 멈췄습니다. 조명성은 청동과 돌에 새긴 글들을 모아 기록한 30권으로 이뤄진 <금석록>을 남겼는데, 이청조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곤경과 위험 속에서도 소중하게 원고를 보관했고 나중에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덧붙여 책을 펴냅니다. 

"우리의 양쪽 가문 모두가 가난했고, 우리는 우리의 지출에 매우 신경써야 했을 만큼 소박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매달 나의 남편은 수당을 받은 뒤에는 얼마의 옷들을 저당잡혀서 손에 쥐게된 현금 500전을 가지고서 어슬렁어슬렁 상국사(절)로 갔고, 거기 시장에서 오래된 명문 복사본 몇 개와 더불어 약간의 과일을 사곤 했다. 집으로 돌아와 우리는 줄곧 과일들을 와삭와삭 씹어먹으면서 함께 그 문서들을 검토하곤 했고, 우리는 신선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행복감을 느꼈다."

가난한 살림에다 옷까지 저당잡히고 책을 사는 남편과 함께 하는 행복이라니요. 책과 그림을 아꼈던 아내 운이에 대한 사랑을 담은 심복의 자서전 <부생육기>가 떠오릅니다. <부생육기>는 청나라 시대가 배경입니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남편은 봉급의 대부분을 서적들을 구입하는 데 썼다. 남편이 한 저작품을 구입할 때마다 우리는 그것을 함께 읽고 교정을 보고, 그 다음에 그것을 권별로 순서대로 정리하고 그 책들을 위한 제목과 표지들을 쓰곤했다. (중략)

내가 좋은 기억력을 갖고 있는 만큼, 우리는 매일 저녁 식사 후에 우리의 서재 귀래당 안에 앉아서 차를 마시면서, 쌓여 있는 서가들을 가리키곤 했다. 그러면 우리들 중의 하나가 말하곤 했다. '어떤 구절은 어느 어느 책 어느 어느 쪽, 어느 어느 행에 나와있다.' 

우리는 이 게임에서 서로 이기려 경쟁했고, 이긴 사람은 먼저 자기 차를 마시는 것이 허용되었다. 우리들 중 하나가 알아맞추었을 때에는 우리는 마음껏 웃으면서 찻잔을 쳐들곤 했고, 너무도 기뻐서 종종 차를 몽땅 옷에 쏟아서 마실 차가 하나도 남지 않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우리의 머리가 백발이 될 때까지 살았다면 얼마나 즐겁게 살았을 것인가! 우리는 여전히 쪼들리는 처지에 있긴 했으나 우리의 정신은 자유로웠다."

길지만 마지막 행까지 옮기고 싶었습니다.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게임하는 장면에선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 시키기>(지호)의 장면과 이미지가 겹칩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책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자유로울 수 있다는 증거인가요.

원 세력이 남쪽으로 내려오자 조명성은 아내 이청조를 안전한 곳에 두고 혼자 임지로 떠납니다. 그리곤 다시 만나지 못합니다. 조명성이 병으로 먼저 숨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이청조는 이리저리 피난을 다니면서도 끝까지 남편의 원고 뭉치를 간직하고 있다 52세(1132년)가 되어서야 원고를 편집하고 책을 묶기 위해 마음 쩌릿한 후기를 남깁니다. 절절하군요.

"소유하기 위해서는 잃어버릴 각오 또한 되어 있어야만 하고, 하나로 결합되길 원한다면 이별 또한 헤아려야만 한다. 그것이 이 세상의 이치인 것이다."

*이번 주말도 책방 쉽니다.



중국성풍속사:선사시대에서 명나라까지

저자
R.H.반 훌릭 지음
출판사
까치 | 1993-01-01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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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적인걸 원작 소설 세트

저자
로베르트 반 홀릭, 로베르트 반 훌릭 지음
출판사
황금가지 | 2010-09-0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중국의 셜록 홈스 적인걸(디런지에)의 활약을 그린 불멸의 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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