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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59] "아빠, 왜 사람 죽이는 이런 책을 읽어?"


아이가 서가에 있는 책들을 보고 묻더군요. '이런 책'의 제목을 말하자면, <연쇄살인범 파일>(human&books), <현대 살인백과>(범우사), <연쇄살인범 고백>(알마), <사이코패스>(바다출판사>[사진]... 같은 책입니다. 한쪽에 따로 정리해두어 잘 보였나 봅니다. 대답은... "공부하려고"였죠. 궁색한 대답이긴 하나 일부 사실이긴 합니다. 하지만 명쾌하게 이 책들을 읽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더군요. 아이가 고개를 갸웃하곤 더 이상을 호기심을 보이지 않은 것이 다행이랄까요.


순수문학보다는 읽는 부담이 덜한, 짜임새 있는 구성에다 반전의 재미가 있는 추리소설, SF소설 같은 장르문학을 좋아합니다. 헌책방에 가면 황금가지에서 나오는 '밀리언셀러 클럽' 시리즈를 챙기죠. 해문출판사의 '아가사 크리스티' 시리즈에 열광했던 어린 시절도 있습니다. 


1984년 <여성동아>10월호 별책부록으로 나왔던 프레데릭 포사이드의 <제4의 음모>나 1976년 출간된 <아가다 크리스티 명작단편선집>(물결)[사진]은 꽤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책입니다. 1994년 4월 <미스터리 매거진> 창간호[사진]도 포함해야겠군요. 이 잡지는 아쉽게도 통권 9호가 마지막이었습니다.(국내에서 장르문학 전문잡지가 오랫동안 생존할 방법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09년 나온 북폴리오의 <주석 달린 셜록 홈즈> 시리즈는 소장할만한 책이었는데 눈 밝은 손님께서 사가셨군요. 어쨌거나, 독서에 재미를 붙이려면 처음엔 역시 만화책과 추리소설로 시작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판타지 소설도 괜찮겠군요.




어떤 장르 등 재미로 읽다가도 어느 시점이 되면 배경 지식이 모자람을 느끼게 됩니다. 작품을 놓고 더 농밀하게 분석하고 미리 스토리를 예측하고 싶은 욕구가 자연스레 생깁니다. 특히 살인, 납치, 실종, 강간, 절도 등 범죄에 대한 줄거리는 패턴이 있고, 작가가 미리 계산에 넣었든 의도하지 않았든 실제 사건이 모티브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책'에서 얻은 지식은 소설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를 볼 때도 실제 사건을 바라보는데도 빛을 발합니다. 사실 별 쓸데없는 지식이긴 합니다. 


추리소설의 공식 가운데 밴 다인의 스무 가지 법칙, 로널드 녹스의 십계, 헐의 추리소설 십훈 등은 추리소설 마니아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듯합니다. 추리소설뿐만 아니라 대부분 소설은 작가(화자)와 독자가 주거니 받거니 장기를 두는 것과 같죠. 이렇게 곁가지 책을 읽는 이유는 작가와의 기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물론 이길 수 없는 싸움이긴 합니다.(뻔한 이야기는 재미가 없죠.) 하지만 예상이 조금씩 맞아떨어지고 가끔 범인까지 가려냈을 때는 성취감을 느끼기도 하죠. 추리소설 읽을 땐 '과학수사 10계명'을 염두에 두고 시작합니다. 법의학곤충학자 마르크 베네케의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알마)에 실린 글입니다. 독자에게 현장은 문장을 꼼꼼하게 살피는 것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그 시점과 등장인물의 관계에 묘사에 집중할 수밖에 없죠.


- 현장을 돌아보는 게 언제나 최선이다. 현장에 될 수 있는 한 가까이 가라.

- 단서는 반드시 현장에 남아 있기 마련이다.

- 곤충만 찾을 수 있다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쥐는 것이다.

- 아무도 믿지 마라. 특히 당신 자신이 그려본 가정을 신뢰하지 말라.

- 열 살짜리 아이가 이해할 수 없다면 잘못된 설명이다. 자신에게 되물어라

- 당신의 가정을 철저히 검증할 수 있는 실험을 하라.

- 다른 모든 가능성이 부정되고 나서 남는 설명이 옳은 것이다. 도저히 그럴 수 없을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이 진실이다.

- 아무리 정확한 계산을 했다 하더라도 그 추정결과가 현장 상황과 정말 맞아떨어지는 항상 유념해야 한다.

- 선악의 문제는 증거를 가지고 가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 유죄냐 무죄냐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관심은 진실이 무엇인가 밝혀내는 것뿐이다.





백지 상태에서 읽어도 재밌지만 아무래도 배경 지식이 있다면 더 깊이 있는 독서가 가능합니다. '이런 책'들은 참혹한 사건들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그 자체가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냉혹한 살인자, 그리고 피해자, 그리고 그 사건을 파헤치는 수사관(혹은 작가)의 관계 속엔 수많은 극적 요소가 숨어 있죠. 


미결 사건인 경우 더 강한 흡입력이 있습니다. 제3자, 독자, 관객의 입장에선 추측과 의문이 풀리지 않을 경우 여운을 가질 수밖에 없죠. 끝까지 범인을 찾지 못한, 영화 <살인의 추억>은 '미결 사건의 매력'을 제대로 뽑아낸 명작 중에 하나라 생각합니다. 풀릴 듯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야말로 스토리를 끌어가는 원동력입니다. 실마리는 있으나 끝까지 범인을 찾을 수 없을 때 책을 덮고 난 이후에도 도파민이 과다 분비되는 걸 느낍니다. 강한 호기심은 판도라의 신화처럼 불행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끝없이 재미를 추구하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호기심의 단초는 호모 루덴스, 놀이와 재미를 찾는 인간의 본능 때문이 아닐까요. 


인간의 본능에 대해 말이 나온 김에... 17명을 강간 살해하고 인육을 먹은 제프리 다머나 영화 <사이코>의 실제 인물인 에드워드 게인같은  흉악한 연쇄살인자들은 원래 악한 천정을 가지고 태어났을까요. 인간의 본능을 경중으로 따질 수 있을까요. 선천적, 후천적인 요소가 모두 인간의 성격과 행동에 영향을 주겠지만 놀랍도록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범죄자의 경우는 유전적인 영향이 큰 것이 아닐까요. 15번 염색체 변형으로 항상 행복감을 느끼는 '안젤만증후군'처럼 말이죠. 삶은 수많은 변수와 알 수 없는 요소들도 가득 차 있고, 끊임없이 선택의 갈림길에 서기 때문에 예측 불가능하고 정답이 없는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헤르만 헤세가 남긴 격언이 아이의 질문에 대한 답일 수도 있겠군요.


"밝음을 이해하려는 자는 어둠을 알아야 한다."






현대 살인백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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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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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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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명 사이코패스(우리 주변에 숨어 있는 이상인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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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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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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