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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62] 책방 일을 하다 보니 어느 공간에 가더라도 책이 있는 곳을 먼저 살펴보게 됩니다. 특히 사적인 공간일 경우엔 서가에 꽂힌 책만 보더라도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습니다. 책이 없는 경우라면 아무것도 알 수 없군요. 책상이나 서가의 정리 상태나 책을 다룬 흔적으로 성격이나 감정을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추정일 뿐입니다. 이것만으로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할 순 없죠. 단지 단편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한 '추론'이라고 해야겠군요. 

책에 애착을 느끼는 대부분 장서가는 '수집증'을 앓습니다.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신의 공간에 책이 점점 쌓이고, 헌책방 출입을 끊지 못하고, 시리즈에서 빠진 책은 어떻게든 채워 넣어야 하고,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절판된 책을 다른 이의 서가에서 발견했을 때 강한 질투를 느끼고, 당장 사지도 못할 책을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집 안이 지저분해진다는 가족의 불평 따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정도라면 확진 받을 만합니다.

병적인 수집증과 일반적인 수집벽의 차이에 대해 임상심리학자 케빈 우는 "수집가들은 자신들의 수집품을 즐긴다. 그들에게 수집이란 즐거움을 주는 행위이며 수집품들을 음미하는 것이다. 반대로 정도가 심한 수집증 환자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비참하게 느낀다"고 주장합니다. <수집-아름답고 기묘한 강박의 세계>(동녘)의 저자 필립 블롬은 "(유골) 수집품은 죽음에 맞선 성채"라고 했습니다. 유골뿐만 아니라 모든 수집품이 그렇지 않나요. 그의 말엔 일부 수긍할 수밖에 없군요.

"수집품이 된 물건들은 새 생명을 얻는다. 유기체의 일부로, 수집가의 경상
鏡像의 일부로, 수집가의 삶에서 하나의 지위를 차지하며 스스로의 법칙을 창조함으로써 발휘하는 하나의 존재로써, 수집품은 유골과 마찬가지로 이미 한 차례 죽었으나 믿는 자, 수집가, 신봉자의 마음 속에서 활활 되살아난다. 그리하여 우리의 유한한 세계와 무한히 풍부한 세계, 카리스마의 세계, 신성함의 세계, 그러니까 궁극적 확실성의 세계와 낭만적 유토피아 사이에 다리를 놓아준다. 수집가는 수집품을 통해서 자기 생이 끝난 뒤에도 새로운 생명을 얻으며, 수집품은 죽음에 맞선 성채가 된다."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 장서가는 '수집의 즐거움'을 누릴 줄 압니다. 책 때문에 자신의 상황이 비참해지는 경우는 제 주변에선 보지 못했습니다. 책과 더불어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분들이군요. 증상이 심하지만 않다면 책은 인생의 윤활유 같은 존재입니다. 조금 과하게(?) 수집한 장서라 할지라도 공간을 차지하긴 하지만 나름 인테리어 효과가 있으니까요.

바스베인스의 <젠틀 매드니스>(뜨인돌)를 보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장서광들에 대한 이야기가 여럿 나옵니다. 미국 전역을 돌며 268개의 도서관에서 2만3천여 권이 넘는 희귀본을 훔친 스티븐 블룸버그나 사후 자신의 장서가 여섯 번에 걸쳐 크리스티 경매에서 3,740만 달러에 팔려 책 경매로는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에스텔 도헤니 같은 이는 단지 즐거움만으로 책을 수집하진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수집벽이 있었기에 이런 기록(?)을 세울 수 있었겠죠.

처음으로 돌아가서, 손님께서 주문하거나 구입해 가는 책을 보고 또 직업병이 발동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책방지기가 관심있는 분야의 책을 주문할 때는 더욱 그렇죠. 저도 오랫동안 찾고 있던 책이었는데 똑같은 책을 찾아달라 할 때는 비슷한 '책 지도'를 펼쳐 놓고 계신 것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물론 더 깊은 책 이야기로 넘어가는 경우는 단골 손님에 한해서 입니다. 책 이야기 만큼 재밌고 흥미진진한 것이 있을까요.

샘 고슬링의 책 <스눕>(한국경제신문)은 생활 공간이나 소지품만을 보고도 그 사람의 성격이나 생활습관을 유추할 수 있는 여러가지 기술들을 소개합니다. 책은 특히 많은 의미와 단서를 담고 있는 사물이죠.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 애거사 크리스티 같은 명탐정이 될 수는 없겠지만 꽤 흥미로운 주제였습니다. 저자가 라리사라는 친구를 사귀었을 때의 '스누핑snooping' 장면입니다.

"그녀의 침대 바로 옆에는 손때묻은 책들이 꽂혀 있는 작고 깔끔한 책장이 있었다. 책장은 제롬 데이빗 샐린저, 존 캐뱃-진, 척 클로스터맨, 사이먼 위젠털 그리고 비슷한 성향의 작가들의 책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 모두가 그녀가 편견 없고 사려 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한 권의 책,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20년대 파리에서의 생활을 회고한 고전 <해마다 날짜가 바뀌는 축제A moveable Feast>는 좀 특별한 장소에 놓여 있었다. 그 책은 그 책만을 위한 작은 단 위에 있었는데, 마치 책장 위의 작은 신전처럼 보였다. 스테파니의 갈매기 모빌처럼, 그 책도 우연히 거기 놓인 게 아니라 분명한 의도를 갖고 놓아둔 것이 틀림없었다."

어쨌거나 제 서가를 둘러보면 사진책, 책방에 관한 책을 빼면 전혀 일관성이 없으니 실력있는 스누퍼가 와도 쉽게 속마음을 들키지 않을 자신이 생기는군요.



젠틀 매드니스

저자
N.A. 바스베인스 지음
출판사
뜨인돌출판사 | 2006-01-1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세상에는 무엇인가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화폐, 우표,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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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

저자
필립 블롬 지음
출판사
동녘 | 2006-01-17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수집은 가장 보편적인 취미 활동이지만 열정이 지나쳐 강박증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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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눕-상대를 꿰뚫어 보는 힘

저자
샘 고슬링 지음
출판사
한국경제신문_ | 2010-05-10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전미 심리학회를 경악시킨 괴짜 심리학자의 기발한 심리실험 당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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