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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71] 오랫동안 사진책을 사서 모았습니다. 사진책 중에서도 사진집은 값이 비싸기 때문에 들인 노력에 비해 많은 책을 구하진 못했습니다. 여유가 있다면 다른 분야보다 사진책에 애정을 쏟을텐데 책방지기 입장에서 '팔지 않는' 책에 돈을 들이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진책이 아닌데도 나름의 기준으로 사진책으로 분류해놓은 책들이 있습니다. 사진이 들어 있지 않은 사진가의 에세이거나, 반대로 사진가가 아닌 이의 사진이나 글을 모은 책인 경우가 많죠. 단지 책에 나오는 몇 구절,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어서 사진책 서가에 둘 때도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조셉 브로드스키(요제프 브로드스키)의 <하나 반짜리 방에서>(고려원)입니다. 요제프 브로드스키는 구 소련출신 시인인데 '사회에 기생충 같은 존재, 시인'이라는 이유로 1972년 추방당해 미국에서 생활합니다. 198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지만 국내에선 크게 주목받지 못한 듯합니다. 

그의 작품이 번역되어 나온 것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 해 몇 권 반짝 나오곤 그 이후엔 찾아보기 힘듭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이라 판매에 자신감을 가졌을텐데 의외로 팔리지 않은 듯합니다. 헌책방에서 구하기 힘들다는게 그 증거입니다. 

그가 노벨상을 받고 이 책이 나온 1987년이면 한창 올림픽 열기가 끓어오를 때였을 테고, 거품 낀 성장의 달콤함을 맛보던 시절이라 망명시인의 진중한 작품은 인기를 끌기가 힘들지 않았을까요. 이 책의 번역자 안정효 님은 그의 시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브로드스키의 시는 시간, 생명의 기원, 우주, 삶과 죽음 같은 존재의 끈질기고도 해답을 찾지 못한 문제들 뿐 아니라 소외감, 좌절감, 정신 이상 같은 심리적인 수수께끼들도 즐겨 다룬다."

저도 <하나 반짜리 방에서>말곤 다른 책들은 본 적이 없군요. 이 책을 읽고 다른 책들을 구해보려 수첩에 적어두고 다닌 적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찾질 못했습니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쉽게 검색과 구입이 가능하지만, <대리석>(한마당), <20세기의 역사>(문학사상사) 딱 두 권만 나오는군요.

<하나 반짜리 방에서>는 시집이 아닌 수필집입니다. '러시아의 우울', '단테의 그늘에서', '그림자를 위하여' 등 10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습니다. '하나 반짜리 방에서'는 그 중 한 편인데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매우 작은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가 살았던 곳은 40평방미터, 약 12평 정도의 오래된 아파트였습니다. 러시아 혁명 이후 "부르조아 계층을 '밀집'시키려는 정책에 따라 우리 건물을 조각조각 토막 내어 한 방에 한 가족씩 수용하게 되었다"고 회상합니다. 그는 이 글에서 독자에게 자신의 앨범을 보여주듯 부모님과 자신이 살았던 공간에 대해 묘사합니다. 그의 '치밀한 묘사력'은 전직 해군장교이자 사진기자였던 아버지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한 가족이 다시 모이고, 그리고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순간들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기도 하고. 비록 그것이 누군가의 아버지가 돌아오고, 궤짝을 여는 행위가 고작일지라도. 그러므로 이토록 사람을 최면시키는 선명함이 존재하리라. 아니면 아마도 내가 사진기자의 아들이어서 내 기억력이 그냥 필름처럼 현상이 되는지도 모르고. 거의 40년 전에 두 눈으로 찍은 사진이. 그래서 그때 나는 마주 눈을 찡긋할 수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출판사에서 일할 때 '하나 반짜리 방에서'만 따로 빼내어 아주 작은 문고판으로 사진책 서가에서 살 수 있게 내면 좋겠다...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팔리는 것을 장담할 수 없으니 편집자 입장에서 쉽게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일이죠. 지금 생각해도 뭐, 마찬가지입니다. 절판된 그의 책을 되살릴 출판사는 없을까요. 아쉽습니다.

이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신이 살았던 공간과 부모님, 자신의 삶에 대한 선명한 묘사 뿐만 아니라 솔직담백함을 갖췄기 때문입니다. '열다섯 살 이후' 자신만의 공간을 갖기 위해 그가 했던 일은 부모님 방과 '반짜리 방' 사이에 늘어나는 책과 책장으로 바리케이트를 치는 일이었습니다. 부모님은 반대로 두터운 휘장을 쳐서 사생활(?)을 보호합니다. 예민한 사춘기 소년에게 책은 정신적 물리적 방벽 역할을 하는군요. 

"해결 방법은 내 쪽에서 점점 더 책장을 많이 쌓아 올리고, 부모의 방 쪽에서는 휘장을 점점 더 두텁게 치는 것이었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그들은 이 해결 방법과 문제의 본질 자체를 둘 다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자들과 친구들은 책보다 훨씬 천천히 그 수량이 늘어나게 마련이었고, 그 뿐 아니라 책은 일단 소유하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 글의 마지막 단락입니다. 유대인, 시인, 망명자... 언제 어디서나 '국외자'로 살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쓸쓸함이 여기에 들어있다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문장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다" 도돌이표 찍듯 읊조렸던 기억이 납니다.

"(옛날 왈츠곡을 연주하는) 군악대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아버지한테 나찌의 집단 수용소와 우리나라의 집단 수용소 가운데 아버지가 보기에는 어느 쪽이 더 나쁘냐고 물어 보게 되었다. '내 생각에는 말이다.' 이것이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나는 천천히 죽어가면서 그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는 것보다 차라리 화형을 당해 얼른 죽어 버리는 게 좋겠다.' 그러더니 그는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다."




하나 반짜리 방에서

저자
죠셉 브로드스키 지음
출판사
고려원 | 1987-12-0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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