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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National Library of Australia, Alec Bolton)은 1969년 마크스 서점 모습입니다. 국내 번역본 표지에도 이 사진이 실렸습니다.


[D+473] "그 책은 없습니다."


책을 찾는 손님께 드리는 '궁색한' 대답이지요. 책방지기 입장에선 가장 하기 싫은 말이나 가장 자주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느 책방이라도 세상의 모든 책을 갖출 수는 없지만 넉넉하게 책을 두고 싶은 꿈은 어느 책방지기라도 마찬가지겠지요.


헌책방에 문의하는 손님은 대부분 절판되거나 구하기 힘든 책을 찾습니다. 책방에 없거나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책일 때는 검색해보는데 구한다 해도 적당한 이문을 남기고 팔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로 수첩에 적어두긴 하지만 어느 책방에 팔고 있으니 그쪽으로 알아보시는 것이 낫겠다 말씀드릴 때가 많죠.


헌책방에서 책을 구하는 루트는 3가지로 나뉠 수 있습니다. 손님에게 직접 책을 매입하거나, 고물상을 통하거나, 다른 헌책방에서 구입하는 경우입니다. 좋은 책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역시 다른 헌책방을 돌며 마음에 드는 책만 직접 골라오는 것인데 싼값에 주시는 곳이 서울에 있으니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온라인 서점이 중고책방을 열고부턴 예전보다 책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하시는 곳이 많습니다. 책 읽는 사람이 줄어드니 고물상으로 나오는 책들도 예전만 못하구요. 정말 쓸만한 헌책은 가뭄에 콩나듯 책방으로 들어옵니다. 안타깝군요.


헌책방에서 책을 찾는 손님 유형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새 책 사는 비용을 아끼기 위한 손님과 '그 책'을 꼭 보고 싶어하는 손님이죠. 손님을 응대하는데 좌우고저,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아무래도 마음을 쏟는 쪽은 '그 책'을 찾는 분들입니다. 


단지 비용을 아끼려는 손님들께는 '사무적인' 태도가 됩니다만, '그 책'에 대해선, 특히 제가 모르는 '그 책'일 때는 오히려 제가 안달(?)을 하며 수소문을 합니다. 온라인에서도 찾기 힘든 책일 때는 묘한 집착에 빠집니다. 손님에게 건넬 책이라도 어떻게든 먼저 내 손에 넣어야겠다는 유애有愛에 시달리죠.


"주문하신 책 들어왔습니다."하고 메시지를 보낼 때 보람을 느끼지만 자주 그러기가 쉽지 않군요. 어렵게 책을 구했는데 주문하신 분께 답장을 받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 전질이 책방에 들어와 오래 전 주문하신 손님께 메시지를 드렸는데 답장이 없었습니다. 아마 따로 구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주인을 찾아가지 못했지만 '그 책'은 충분히 곁에 둘만 하다 생각합니다.


헬렌 한프의 <채링크로스 84번지>(궁리)에 실린 1950년 9월 20일자 편지입니다. 이 책은 뉴욕에 사는 '성공하지 못한' 작가 헬렌 한프와 런던 채링크로스 84번지에 있던 헌책방(마크스&Co.) 점원 프랑크 도엘이 주고 받은 편지를 엮은 책입니다. 1949년부터 1969년까지 20년 동안 두 사람은 편지로 책을 주문하고 안부를 묻습니다. 손님이 주문한 책을 구해 답장을 보내는 그 마음,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국내에선 책보다 앤서니 홉킨스와 앤 밴크로프트가 주연한 영화 <84번가의 연인>(1987년)이 더 유명하죠. [사진](National Library of Australia, Alec Bolton)은 1969년 마크스 서점 모습입니다. 국내 번역본 표지에도 이 사진이 실렸습니다. 책방은 사라지고 기념동판만 남아 있다지만 언젠가 가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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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한프 양,


편지 드린 지 너무 오랜만입니다. 저희가 당신 요청을 다 잊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하튼, 현재 재고에 옥스퍼드 판 영시선이 들어왔습니다. 인도지에 파란색 헝겊 제본으로 1905판 원본이며, 면지에 잉크로 글씨 쓴 것이 있기는 하지만 상태가 양호한 중고 서적으로 가격은 2달러입니다. 이미 구입을 하셨을 수도 있기에 우송 전에 미리 여쭤보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언젠가 뉴먼의 대학의 이상에 대해 문의하셨죠. 이 책의 초판에 관심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한 부를 구입했는데, 세부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뉴먼(존 헨리, 명예신학박사) 더불린의 천주교도를 대상으로 행한 대학 교육의 본질과 전망에 관한 강연. 초판, 더블린, 전8권, 송아지 가죽 장정, 몇몇 쪽에 약간 빛 바랜 얼룩이 있으나 제본에 상한 곳이 없는 상태 양호한 중고서. 가격 6달러


원하실 경우를 생각해서 답장 주실 때까지 두 권 모두 한쪽에 보관해두겠습니다. 


다정한 안부를 전하며

 마크스 서점 

프랑크 도엘 드림


*이번 주말 쉽니다.




채링크로스 84번지

저자
헬렌 한프 지음
출판사
궁리 | 2004-01-3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이 책은 헬렌 한프라는 한 작가와 런던 채링크로스 가에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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