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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일지

[D+426] 김수남 선생님의 <굿>

sosobooks 2015. 1. 12. 23:14



[D+426] 예전 직장에 다닐 때는 책 살 돈을 따로 떼어놓았습니다. 번 돈의 1할을 책값으로 쓴다...는 식이었죠. 새 책 헌 책 가리지 않았지만 주머니가 가벼웠던지라 주로 신촌, 홍대 근처 헌책방을 돌아다니길 좋아했습니다.

월급날이면 '숨어있는 책방', '공씨 책방', '글벗서점', '우리동네 책방', '온고당'을 한 바퀴 돌고 양손 가득 책을 들고선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특히 사진책이 많았던 '숨어있는 책방'과 '온고당'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사진책과 문고판에 가장 많은 애정을 쏟았고, 그 외엔 분야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좋아하는 사진가의 서명이 들어 있는 사진집이나 구하기 힘든 외국 사진집을 찾기라도한 날엔 뛸 듯 기뻤죠.

김수남 선생님의 <한국인의 놀이와 제의>(평민사) 시리즈를 사모으다 책더미 속에서 열화당에서 나온 엽서집 <굿>을 찾아내는 그런 재미는 헌책방이 아니면 느끼기 힘듭니다. 책 때문에 방이 비좁아져도 그런 경험 때문에 쉽게 헌책방 출입을 끊지 못했습니다. 책방지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다른 헌책방에 가면 소풍 가서 보물찾기를 하는 아이 심정이랄까요.

사진책을 구해오면 일기를 쓰고 가지치기해서 또 구해볼 책이 없나 이곳저곳 자료를 모으고 다시 책방을 기웃거렸던 생각이 납니다. 지금은 책방을 지키는데도 에너지가 부족하니 (사진책에 대해) 예전 같은 열정은 없습니다. 그래도 여유가 있다면 좋은 사진책을 어떻게든 구하고픈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아래글은 <굿> 엽서집을 구했을 때 남긴 글입니다. 2005년이니 1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 이듬해(2006년) 김수남 선생님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사진책을 정리하다 <풍물굿>(평민사)을 들춰보니 선생님께서 정말 귀한 자료를 남기고 가셨다는 생각을 합니다.




김수남 선생의 사진에선 무기(巫氣)가 느껴진다. 아마 자신에게 내재된 무기를 사진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리라. 그런 '끼'가 있었기에 우리나라 굿을 집대성한 <한국의 굿>(열화당) 20권을 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방대한 사진집을 내려면 신이 내리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잠시 <한국의 굿> 제목만 살펴보자. 황해도 내림굿, 경기도 도당굿, 제주도 영등굿, 수영포 수망굿, 평안도 다리굿, 전라도 씻김굿, 제주도 무혼굿, 함경도 망묵굿, 은산 별신굿, 옹진 배연신굿, 강사리 범굿, 제주도 심방굿, 양주 경사굿과 소놀이굿, 통영 오귀새 남굿, 서울 부군당굿, 거제도 별신굿, 황해도 지노귀굿, 위도 띄뱃굿, 소돌별신굿, 서울 지노귀굿.

우리나라의 굿이 <한국의 굿>을 통해 소개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많은 굿과 만신과 무당이 일제 침략기를 넘기고 새마을 운동의 광풍이 몰아치던 사이 사라져 버렸다. 굿은 우리 민족의 생활의 일부였다. 굿을 통해 억울한 혼을 달래고, 병을 잠재웠으며,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 받았다. 

섣달 그믐에 매구(맷굿이라고도 한다)치고 정초에 마당밟기, 정월대보름에 마을굿을 지내는 것은 빠져서는 안될 연례행사였다. 꽹과리를 앞세우고 징 울리고 북치고 장구치고 마을 어른들이 어깨춤을 추며 집집마다 돌면 우리들도 덩달아 신이나서 뒤를 따랐다. 그게 딱 20년 전 일인데 젊은 사람들이 빠져버린 고향마을에선 자연스레 마을 굿도 사라져 버렸다. 이젠 그의 사진집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잃어버린 풍경으로 남았다. 

얼마 전 헌책방에서 열화당에서 만든 <한국의 굿>에서 가려 뽑은 20장의 사진으로 꾸민 엽서집을 구했다. 짙은 흑백 사진으로 20장 모두가 온전히 들어있다. 색은 바랬지만 흑백의 이미지는 더욱 진해진 느낌이다. <한국의 굿> 엽서집은 절판된 상태다. 사진집도 마찬가지고. 사진집의 출판과 함께 이벤트로 엽서집을 발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절판된 엽서집은 책보다 더 구하기 힘들다.

엽서집은 사진집을 구해보기가 부담스러울때 사진집을 대신한다. 물론 사진집을 구해 보는 것이 좋겠지만 사진집의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그나마 엽서집이라도 있으면 참 다행한 일이다. 사진집의 책장을 넘기는 것보다 방바닥에 모든 사진을 펼쳐놓고 보는 것도 엽서집 만의 좋은 점이다.

<한국의 굿> 엽서집 표지에 나와있는 신이 내린 신딸(만신이 되기 전의 호칭) 채희아를 본다. 그녀의 모습에서 자신을 부정해야하는 슬픔과 신을 받아들인 희열이 동시에 느껴진다. 펼친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치켜든 방울로 자신의 몸에 깃든 신의 몸짓을 대신하며 눈을 지긋이 감은 그녀의 얼굴에 눈물이 비친다. 

굿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보자. 다음은 <한국의 굿> 엽서집에 나온 설명이다. 

"무속의 중심이 되는 의례를 '굿'이라고 한다. '굿'에 대한 최초의 기록으로 12세기 고려의 문인 이규보가 쓴 '노무(老巫)'가 남아있다. 유학

자의 입장에서 무녀의 굿을 비판적으로 쓴 글이지만, 현재 경기도 지역 강신무의 굿과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당시 이미 오늘날과 같은 굿의 양식화가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무당은 한강의 중심으로 이북이 강신무(내림굿과 같은), 이남은 세습무로 나뉜다. 강신무란 의학적으로 치유가 불가능한 신체적, 정신적 질환으로 고생하다가 신을 모셔야 된다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여, 입무 의례인 내림굿을 하고 무당이 된 사람이다. 이들은 굿을 할 때 직접 신을 받아 신격화 되고 예언을 하는 능력이 있다. 

한편 세습무란 신들리는 현상과 관계없이 다만 가계로 무업이 계승되어 무당이 된 경우인데, 반드시 여자만이 굿을 했고, 남자는 악사가 되어 뒷바라지를 해주는 것이 상례였다. 물론 한강 이남에도 강신 현상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들은 단순한 점장이가 될 뿐 굿을 하는 무당은 될 수 없었다." - (<한굿의 굿> 엽서집 해설 가운데, 황루시)

덧붙여, 현재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엽서집은 현암사에서 나온 '아름다운 우리 ~'(아름다운 우리 석불, 장승 등이 있다) 엽서집과 미술문화에서 나온 '우리문화보기총서' 엽서집이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엽서집은 모두 관조스님 사진이다.



풍물굿(한국인의 놀이와 제의 1)

저자
임석재 지음
출판사
평민사 | 1986-09-01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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