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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90] 법정스님이 세상을 떠나신 지 5년이 지났군요. 스님이 계셨던 길상사에서 추모법회(16일)가 열렸습니다. 스님께서 떠나시고 <무소유>(범우사) 값이 터무니없이 올랐던 일이 기억납니다. "나의 이름으로 출판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셨던 때문이었습니다. 


<무소유>를 '소유'하려는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당시 베스트셀러 10위권 내에 <일기일회>등 법정스님의 책이 무려 7권이나 자리했고, 옥션에 나온 <무소유> 초판이 21억원이 넘는 호가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허위 입찰이었겠지요. 

스님께서 "출간하지 말라" 유언을 남기신 것은 어찌보면 출가자로서 당연한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스님께서 보조선사 법어 '권수정혜결사문'을 풀어 옮긴 <밖에서 찾지 말라>(불일출판사)에 '문자법사文字法師'에 대한 구절이 나옵니다. 스님은 글로 깨우치려는 이들을 경계하고 자신의 뜻이 왜곡되는 걸 원치 않으셨기에 그런 유언을 남기신 거겠죠.

"지공법사는 '대승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다시 도를 구하려고 하는고. 여러 가지 뜻을 이리저리 찾으니 자기 몸도 하나 구제하지 못하는구나. 자나깨나 남의 글과 어지러운 말만을 들추며 자칭 지극한 이치가 오묘하다고 하니, 일생을 헛되이 보내면서 영원히 생사윤회에 빠져있다."

<무소유>가 처음 출간된 해는 1976년입니다. 올해로 4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스님의 글은 여전히 맑고 향기롭습니다. 두고두고 펼쳐보아도 머릿속에 찬바람이 이는 느낌입니다. 스님의 유언으로 더는 새 책을 구입할 수는 없지만 헌책으로 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스님은 <무소유>에서 좋은 책에 대해 이렇다 말씀을 남겼습니다.

"좋은 책이란 물론 거침없이 읽히는 책이다. 그러나 진짜 양서는 읽다가 자꾸 덮이는 책이어야 한다. 한두 구절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주기 때문이다. 그 구절들을 통해 나 자신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양서는 거울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그 한 권의 책이 때로는 번쩍 내 눈을 뜨게 하고, 안이해지려는 내 일상을 깨우쳐준다."

당장 입맛에 맞는 책에 쏠릴 지라도 가끔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을 펴야할 때도 있습니다. 그 책이 어떤 책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의 처지에 따라 책도 쓰임이 다를 수가 있으니까요. 어쨌거나, 양서는 '거울 같은 것'이어야 함은 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의 유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을 옮깁니다. 스님의 책을 신문배달했던 분에게 전했다는 기사를 나중에야 보았습니다. 스님이 남긴 책은 <월든>, <생텍쥐베리의 위대한 모색>, <선학의 황금시대>, <선시>, <벽암록>, <예언자> 6권이었습니다.

"덕진은 머리맡에 남아있는 책을 나에게 신문을 배달한 사람에게 전하여 주면 고맙겠다."

[사진]은 저번 주말 산청 운리 단속사지에서 찍은 매화입니다. '정당매'는 더는 꽃피지 않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