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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일지

[D+508] 유정산인에게 준다

sosobooks 2015. 4. 3. 16:09




[D+508] 어제 오후 책방 땡땡이(?)치고 산청 남사마을을 다녀왔습니다. 한국화가 이호신 선생님 댁도 방문했는데 화실에 걸린 선생님의 단속사지 정당매 그림을 보고 반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정당매가 더는 피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더군요.

조선시대 선조 때 유학자 남명 조식의 저술 <남명집>(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에서 풀어 한길사에서 펴낸 책이 있습니다.)에는 정당매를 보며 지은 시가 두 편이 나옵니다. '유정산인에게 준다'와 '단속사 정당매'인데 단속사지에 가면 '유정산인에게 준다'가 작은 돌 비석에 적혀 있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오래 전 썼던 글을 떠올렸습니다. 10년 전(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군요.) 단속사지에 갔다 여행기를 쓴 적 있는데 아래는 그 도입부입니다. '유정산인'은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이끌었던 사명대사를 말합니다. 남명 조식(1501-1572)과 사명대사(1544-1610)는 마흔셋 나이차가 컸지만 '유정산인에게 준다' 시만 놓고 보면 벽을 느낄 수 없습니다. 

자신을 찾아온 '젊은 중'의 인물됨과 그릇을 알아보고 시를 써서 이별을 아쉬워하는 노학자의 마음이 절절하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드'가 통하는 것은 나이와는 상관없는 듯합니다. 

....

"나는 이제 늙은 몸이야. 이제 내가 졌던 짐은 젊은 자네들의 몫일세."
"그런 말씀 마십시오."
"유정(사명당의 법명), 나라가 이렇게 가다간 큰 변고가 생길 것이네. 늙은이의 직감이야."
"저도 걱정입니다. 백성들은 굶주리고, 양반들은 당파질로 허송세월이니."
"구름이 몰려오는군. 비라도 내릴 모양이야. 무릎도 시큰하구먼. 이제 일어남세."

물기가 잔뜩 배인 바람이 웅석봉을 타고 내려 왔다. 남명과 사명당은 단속사를 떠나 덕천동(지금의 산청군 시천면)으로 향했다. 지리산 골골 빠짐없이 돌고 며칠 산천재에 묵었으니 떠날 때가 되었다 생각한 유정은 마지막으로 남명과 덕천동과 가까운 곳에 있는 단속사를 찾았다.

천년을 이어온 석탑 앞에 마주앉아 남명과 유정은 시절을 걱정했다. 종심을 바라보는 남명과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사명당은 나이와 신분의 벽을 넘어 통하는 것이 있었다. 제자들에겐 엄했으나, 파르라니 머리를 깎고 누더기 승복을 걸친, 형형한 눈빛을 가진 유정이 산천재를 찾았을 때 남명은 오랜 지기를 만난 듯했다.

그렇게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길 나흘이 지났고, 이제 이별할 시간이 된 것이다. 단속사의 당간 지주가 소나무 숲에 가려 보이지 않을 무렵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남명은 잠시 길섶 너른 바위에 앉아 가쁜 숨을 내쉬었다. 유정은 성긴 짚신을 조여 매고 남명을 등에 업었다.

"고마우이. 자네를 붙잡고 고생을 시키네."
"제가 괜히 모시고 나와서 편찮으실까 걱정입니다."
"덕분에 이렇게 자네 등에 업혀 가는 것도 괜찮구먼."

남명은 유정의 등에 업혀 천천히 시를 읊조렸다. 유정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비가 눈썹을 타고 내렸다. 입술을 깨물었다. 남명은 사명당의 어깨가 약하게 들썩이는 것을 느꼈다. 이제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돌로 된 물 홈통 위에 꽃잎 떨어지고, (花落槽淵石)
옛 절 축대엔 봄이 깊었구나. (春深古寺臺)
이별할 때를 잘 기억해 두게나! (別詩勤記取)
정당매(政堂梅) 푸른 열매 맺었나니. (靑子政堂梅)"

*덧붙인 그림은 이호신 선생님 작품입니다. 화실에서 보았던 그림과는 다르군요. 2013년 '지리산 진경순례전'에 전시된 작품입니다.
*여러 날 몸살을 앓아 비실비실했습니다. 책방일지 쓰는 것도 덕분에 오래 쉬었습니다. 환절기 건강 조심하세요.
*이번 주말 쉽니다.




남명집

저자
조식 지음
출판사
한길사 | 2001-10-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남명 선생 탄신 500주년 기념 출간!위대한 시대정신과 비판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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