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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일지

[D+346] 손바닥 소설_모모선생

sosobooks 2014. 10. 23. 06:15




[D+346] 모두 18편, 손바닥 소설 쓰기 모임을 하고서 지금까지 쓴 작품(?) 수입니다. 완성인 것도 있고, 미완으로 남은 작품도 있는데 2주에 한 번씩 거의 꼬박꼬박 숙제를 내었습니다. 책방을 열고 글쓰기 모임을 해봤으면 좋겠다 마음을 먹고 공지를 띄운 것이 벌써 1년이 다 되어갑니다. 

이왕 글쓰기 모임을 하려면 소설이 좋겠다 생각했는데 상당히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한편으로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모임이 끝나는 12월까진 '창작의 고통'에 시달려야 하니 즐거움보단 아직 고통이 더 가까이 있습니다. 따로 선생님을 모시지 않고 모임을 시작했는데 그래서 더 자유로운 글쓰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읽는 것과 쓰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읽기가 수동이라면 쓰기는 능동의 행위입니다. 이야기를 지어내는 일은 단순 쓰기보다 훨씬 힘든 일이더군요. 창작의 고통은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질기게 사람을 괴롭힙니다. 끝맺음을 한 뒤에도 계속 되돌아보게 됩니다.

덧붙인 <모모선생>은 원래 책방 잡지에 넣으려 했습니다. 잡지를 내겠다 공지를 하고 이런저런 사정(책방지기 게으름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으로 계속 늦춰지고 있습니다. 잡지가 아닌 다른 방식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쉽지만 최대한 손해(?)를 줄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달까요. 아마추어의 어설픈 작품으로 <책방 잡지>를 기다렸던 분들께 대신 용서를 구하고자 합니다.

*사진은 아주 오래오래 전에 진주여고 뒤편에서 찍었습니다. 기억으론 15년이 넘은 듯합니다.

...............

[무릉서점-모모선생] 

책들이 눅진눅진한 곰팡내를 풍기기 시작했다. 습기로 배를 채운 책들이 트림을 하고 방귀를 뀌었다. 그 냄새가 짙을수록 나는 책이 '살아있는 것’이라 믿었다. 3일째 장맛비가 줄기차게 내렸다. 오가는 사람도 뜸했다. 비를 피하려는 날벌레들만 간판 밑에서 웅성거렸다. 단 한 명 유일한 손님이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냄새가 역하다며 손사래를 치며 돌아갔다. 

비누 냄새 나는 인도산 향을 꺼내 불을 붙였다. 인도 여행을 다녀온 단골 손님이 선물로 준 것이었다. 흰 연기가 꼬물거리며 한 뼘쯤 떠올랐다 끈끈한 습기 속으로 흩어졌다. 비 오는 날엔 비누냄새가 더 진하게 퍼졌다. 덕분에 책들의 곰팡내가 잠시 자리를 비켰지만 향이 흩어진 자리를 금세 메웠다. 향이 모두 타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향이 반쯤 타버린 재를 툭, 떨어뜨릴 때 가게 문이 열렸다. 빗소리가 요란했다.

"주 선생 오늘 한 잔 안 하시오?"

그였다. 나는 그를 '모모선생님'이라 했고, 그는 나는 '주 선생'이라 불렀다. 그가 책방을 찾을 때마다 나는 가장자리가 까맣게 그을린 쥐포를 안주삼아 맥주잔을 홀로 기울이고 있었고, 모모 선생은 어느 순간부터 나를 술 주酒자를 붙여 주 선생이라 했다. 그리고 나는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 그를 '손님'이 아닌 '모모선생님'하고 불렀다. 모모, 그러니까 한자로 모모某某, 아무개 선생이었다. 모모 선생이 책방에 처음 왔던 날도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었다. 50대 초반으로 보였고 배낭을 멨었다. 옷이 비에 젖어 후줄근했지만 그 나이쯤에서 풍기는 세속의 때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3년 전 장마였고, 그 후 그는 한결같이 비 오는 날 마칠 시간에 맞춰 서점을 찾았다. 1년 쯤 지났을 때 정중하게 "존함을 여쭤 봐도 될런지요" 물었지만 그는 조용히 웃기만 할 뿐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 

모모선생은 비가 오는 날에만 책방에 오는 특이한 손님이었지만 책 고르는 눈썰미는 날카로웠다. 그가 오는 날, 그러니까 비오는 날엔 습관처럼 퇴근 전에 골목길 코너에 있는 삼삼슈퍼에 가서 맥주 한 병을 사선 미리 간판 끄고 책상 위에 쌓여있는 책들 중에 아무거나 뽑아들고 읽으며 시간을 때웠다. 장마 때는 항상 손님은 뜸했고 시간은 더디게 갔다. 그가 책방에 오는 시간은 거의 일정했다. 매번 가게 문을 내리기 전 맥주 한 잔 들이키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그가 오면 나는 습관처럼 책상 서랍에서 종이컵을 꺼내 맥주를 따르곤 그에게 건넸다. 맥주 거품이 가라앉을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아주 느린 걸음으로 새로 들어온 책들이 꽂혀있는 서가를 살폈다. 모모선생이 사가는 책들은 주로 소설이었다. 책방이 문을 닫을 때까지 질기게 서가 한 자리 자지하고 있을 '불쌍한' 소설들만 골라갔다. 출판사도 작가도 알려지지 않은 생경한 책들을 좋아했다. 처음에는 책보는 눈이 없는 사람이다 싶었다. 하지만 소설 이외에 책을 고를 땐 내놓기 아까운 책들만 골라냈다. 종이컵에 담긴 맥주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비우며 서가를 꼼꼼하게 훑었다. 들어온 책이 없어도 마찬가지였다. 모모선생이 책을 고르는 동안에는 시간이 아주 느린 속도로 흘렀다. 나는 하염없이 그가 맥주 비우기를 기다렸다. 그가 오는 날엔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한 시간쯤 늦어졌다.

오늘은 맥주를 마실 생각이 없었다. 비가 오는데도 왜 그가 나타나지 않을까 궁금했었다. 3일째가 되어서야 나타났고, 그의 행색은 초라하고 병색이 짙었다. 얼마 전 첫 장맛비가 내릴 때 그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무언가 잃어버린 존재처럼 느껴졌다. 찬바람이 불어야 어울릴 외투를 걸치고 목에 수건까지 둘렀다. 입술이 퍼랬다.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는데 "춥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말을 하면서도 아랫입술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안색이... 병원에 가보시는 게 좋겠어요."
"오랫동안 앓던 병이라, 내가 잘 안다우. 며칠 끙끙대면 절로 나아요. 오늘은 맥주가 없으니 허전하군요."
"오늘은 삼삼슈퍼 가는 걸 깜빡했어요. 술 생각이 안 나네요. 지금이라도 한 잔 할까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전기주전자에 물을 끓이곤 봉지 커피를 타서 모모선생에게 내밀었다. 떨리는 손으로 커피잔을 받았다. 잔 속 진한 커피 위로 형광등 불빛이 일렁였다. 

"오늘은 늦게까지 책 고르시지 말고 일찍 들어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붉은 노끈으로 질끈 묶어둔 과월호 잡지 꾸러미 위에 걸터앉은 그는 창밖을 힘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책방에 오는 단골손님들은 과거에 대해 말하기를 즐겼다. 자신의 과거, 다른 이의 과거, 책방 주인의 과거까지 도돌이표를 찍으며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풀었다. 무릉서점을 찾는 몇 안 되는 단골들은 과거를 공유했다. 사라져버린 책방들에 대한 추억과 비껴간 책에 대한 인연, 여기저기 주워들은 자투리 정보로 끼워 맞춘 나의 과거를 중국집 회전 테이블에 올려놓은 요리마냥 즐겼다. 모모 선생은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유일한 단골이었다. 그는 말이 없었다. 끊임없이 말을 아끼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꽉 다문 입술을 뗄 때는 나를 "주 선생"이라 부를 때와 "얼마요?"라고 물을 때가 거의 전부였다. 그가 비오는 날 가게 문을 닫을 때쯤 나타나는 이유도 말을 아끼기 위한 것이라 믿었다. 가끔 단골들과 마주쳐도 인사하길 꺼렸다.

그는 야위어 갔다. 처음 책방을 찾았던 3년 전엔 풍채가 좋았다. 눈빛에 그늘이 스며있었지만 그건 책에 깊이 빠진 사람들에게 종종 발견되는 것이었으니까. 몸이 야위어 가는 만큼 사는 형편도 나빠진 듯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반질반질 광택이 나는 가죽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값을 치렀다. 올핸 꼬깃하게 접은 지폐를 하나씩 펴서 건넸다. 지폐 사이엔 연락처가 빼곡히 적힌 코팅된 작은 종이를 가지고 있었다. 언뜻 유명 출판사 이름과 전화번호가 보였다. 지폐 가장 자리에 피가 묻어 있기도 했다. 아직 마르지 않은 그 돈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가끔 각혈을 한다 말했다. 그러고 보니 입가에 피딱지가 말라붙어 있는 그의 모습을 본 기억이 있었다. 

한참 소설 코너에서 엎드려 있던 모모선생이 일어섰다. 목에 두른 수건을 여미며 고른 책을 내 앞에 놓았다. 딱 1권이었다.

<카인의 고백>, 책방을 인수할 때부터 붙박이로 꽂혀있던 책이었다. 누구도 그 책을 꺼낸 사람은 없었다. 이름 없는 출판사와 작가의 책이 가는 말로는 거의 정해져 있다.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폐지로 버려지는.

"선생님께서 또 책 목숨 하나 구해주시는군요."
"이 책 목숨이랑 내 목숨이랑 바꾸는 것 같구려. 3년 동안 이 책이 팔리길 기다렸는데."
"무슨 그런 말씀을... 내일 병원에 꼭 가보세요. 그 책은 그냥 드릴게요."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가 가게 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들리지 않았던 빗소리가 갑자기 침묵을 깼다. 비닐봉지에 책을 쌌다. 그는 외투 안으로 책을 밀어 넣었다.

"이렇게 하면 비에 젖진 않겠죠. 그럼 이만, 다녀올 곳이 있어서 당분간 못 볼지도 모르겠어요."
"다음에 오시면 맥주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그가 삼삼슈퍼가 있는 골목길 모퉁이로 돌아나갈 때까지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허위허위 걷는 그가 불안했다. 모모선생이 완전히 어둠 속으로 사라진 후에도 한참동안 간판 불을 끄지 못했다.

이틀 뒤 <카인의 고백>을 들고 온 사람은 형사였다. 책머리에 찍은 "헌책 사고 팝니다 무릉서점" 푸른 직인이 얼룩덜룩 물에 젖어 번져있었다. 그는 시외버스터미널 서울행 버스를 타는 벤치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고, 그땐 이미 숨이 멈춘 상태였다. 형사는 폐암과 영양실조가 사인이라 했다. 가족과 연락할 길이 없어 이 책이 단서가 될까 해서 찾아왔다고 했다. <카인의 고백> 표지를 열었다. 책날개에 30대 후반 쯤으로 보이는 젊은 작가 사진이 실려 있었다. 3년 전 모모선생이 무릉서점을 처음 찾았을 때 모습이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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