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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일지

[D+345] 철학자의 여행법

sosobooks 2014. 10. 22. 04:54




[D+345] 비가 그치곤 날씨가 꽤 쌀쌀해졌습니다. 스쿠터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데 밤에 집으로 갈 땐 겹으로 외투를 입어야 합니다. 비가 내리면 걱정거리가 계단에 쌓아둔 책들이 젖는 것입니다. 세찬 비가 오면 빗물이 그대로 계단을 타고 내릴 때가 있습니다. 결국 맨 아래 물 먹은 책들은 빛을 보지 못하고 폐지로 팔려가겠지요.

비 오는 날에는 책방도 한가합니다. 평소에도 한가하지만 비 오는 날엔 더더욱 한가하죠. 한가하기 때문에 책 읽기에 더할 나위 없습니다. 비 오는 날의 독서란 몸과 마음에 모두 납추를 단 고요와 집중의 행위입니다. 평소에는 진도 나가기 힘든 책도 비오는 날엔 꽤 잘 읽힙니다. 비가 뜰뜸을 가라앉히고 군더더기를 걸러내는 정화의 힘을 가졌기 때문이겠지요. 김진섭 님은 수필 '우송雨頌'에 이렇게 썼습니다.

"비는 한 개의 시가로써 우리 앞에 군림하여 이 한없이 큰 매력은 불안하기 그지없는 세가貰家를 그리운 자저自邸로 화하게 하고 피할 수 없는 번민을 존재의 희열로 변하게 한다. 비의 위대한 정화력은 그 영역 속에 든 모든 사람에게서 그들의 괴로운 현실을 빼앗고 그것에 대치하되 보다 심원한 초현실로써 하는 것이다. 거리거리의 모든 구조물을 세척할 뿐 아니라 그것은 실로 인간의 영혼까지 세탁하는 것이다."

비오는 밤은 완벽하게 독서를 위한 시간입니다. (한 잔 술이 먼저 생각날 수도 있겠습니다.) 비 오는 지난 이틀 동안 미셸 옹프레의 <철학자의 여행법>(세상의모든길들)을 들고 있었습니다. 다음 주에 며칠 책방 문을 닫고 여행을 다녀올 계획이라 이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읽다보니 사진가 이상엽 선배님의 사진이 들어 있더군요.

어쨌거나 비와 어울리는 책이었습니다. 여행지에 대한 '감탄'과 '감상'은 없습니다. 제목 그대로 '방법론'에 대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여행이라는 씨줄에 지식을 날줄로 엮습니다. 설렁설렁 읽을 수가 없더군요. 여행에 대한 사유를 담은 책으론 당분간은 이만한 책을 찾기 어려울 듯합니다. 

저자는 여행의 시작이 "도서관 혹은 서점에서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책방에 있다보면 책들이 어디론가 떠나도록 부추기니까요. 가을비 내리는 날 좋은 책 한 권 만난 기쁨을 표현할 길이 없군요.

"여행은 도서관에서 시작된다. 혹은 서점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신비하게도 여행에 대한 욕망은 우리 몸속에 이미 자리잡고 있던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우리 내면에서 점점 커지게 된다. 그러다가 방랑 생활이 시작되면 우리는 목적지를 선택하고 현실화하고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 지도, 소설, 시가 쌓여 있는 책장을 찾게 된다. (중략)

독서는 일종의 시작 의식과도 같다. 독서는 이교도의 신비를 밝혀 준다. 욕구가 점점 커질수록 한층 정제되고 세련되고 독창적인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인위적이거나 문화적인 환희를 경험할 수 있으려면 자연스러운 욕구가 넘쳐흘러야 하고, 그럴 수 있을 때 비로소 관능적인 여행이 가능해진다."

*사진은 오래 전 히로시마 여행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폭우가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철학자의 여행법

저자
미셸 옹프레 지음
출판사
세상의모든길들 | 2013-03-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역사를 보는 새로운 관점 ; 여행하는 자 Vs 정착한 자서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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