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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일지

[D+339] 탐라 기행

sosobooks 2014. 10. 16. 05:03




[D+339] 밤새워 책 읽는 경우는 딱 두 가지입니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재밌는 책을 발견했거나, 어떻게든 읽어야만 하는 경우입니다. 전자라면 행복하겠지만, 후자라면 괴로운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밤 새워 읽고 싶을 만큼 재밌는 책들이 많긴 하지만 실제론 새벽 3시를 넘기면 책을 읽는 건지 꿈을 꾸는 건지 그 경계에서 떠돕니다. 사실 그 시간을 넘긴 이후라면 반쯤 수면 상태라고 해야겠군요. 

어제, 손님께서 가져온 책은 모두 '좋은 책' 뿐이었습니다. 책을 매입해야 하는 책방지기 처지로선 반가운 일이긴 한데 내놓는 손님 입장에선 마음 아플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책방에 책을 팔러 갈 때 그러했으니까요. 어떤 사정이 있어서 책을 팔러 오신 건지 묻지 않았습니다. "좋은 책들인데 팔지 마시고 가지고 계신 편이 좋겠습니다." 말씀 드리는 것이 제가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소소책방의 책 매입가 기준은 온라인서점 알라딘의 중고책 매입가입니다.

손님이 내놓으신 책 중에 시바 료타로의 <탐라 기행>(학고재)을 보고 반가웠습니다. 이 책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2005년 소설가 현기영 선생님, 화가 강요배 선생님과 함께 제주 4.3항쟁 현장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진도 찍고 기사도 써야 했던지라 제주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던 차에 <탐라 기행>을 알게 되었지만 구해 읽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주가 고향인 <맨발의 겐> 번역자 김송이 선생님을 인터뷰하게 되었을 때도 구할 수가 없었죠. 

그후론 이 책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만날 줄을 몰랐습니다. 1998년 초판이 나오곤 그걸로 끝이었으라 생각하는데, 이 책을 밤새워 읽고 나니 함께 출간된, 그가 한국을 돌아보고 쓴 <한나라 기행>도 구해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역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바탕이 된 기행문은 생명력이 깁니다. 기행문, 그러니까 여행서의 경우 유행에 민감한 편인데 저자의 감상보다 지식, 그것도 철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쓴 여행서는 두고두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바 료타로의 <탐라 기행>은 그리 인기가 없었나 봅니다. 좋은 책이라 해서 반드시 많이 팔린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원래 이 책은 <주간 아사히>에 '가도를 가다' 시리즈로 연재한 것을 묶어 1986년 일본에서 출간되었습니다. 10년이 훌쩍 지난 다음 국내에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일본의 국민작가(이런 표현은 좋아하지 않습니다만...)인 시바 료타로의 기행문임에도 많이 팔리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시바 료타로는 글을 쓸 때 엄청난 자료를 수집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아마 신문사(산케이 신문) 기자 출신이었기 때문에 더욱 자료 수집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까요. <탐라 기행>에도 그의 글쓰기 방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중국, 한국, 일본... 고대부터 현대까지 아우르는 그의 지식은 놀랍습니다. 깊고 폭넓은 독서가 그가 쓴 많은 작품의 바탕이 되었겠죠.

이번 달 25일부터 며칠 동안 제주로 떠나기에 <탐라 기행>을 밤새워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니 김석범 님의 <화산도>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화산도>는 제주 4.3항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고 1984년 '오사라기 지로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국내에는 번역 출간되지 않았는데, 관심을 가진 출판사가 없었을까요. 시바 료타로가 김석범 님의 문장을 두고 "잭 런던 같은 야성을 느끼게 하는 문체"라 극찬하여 더 읽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시바 료타로의 지인인 현문숙 님이 운영했다는 고서점 '칼파'도 궁금하군요. 아직 그 서점이 남아있을까요. <탐라 기행>에서 옮깁니다. 번역이 정말 매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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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즘은 어느 민족, 어느 향당에게나 있게 마련이므로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천박한 내셔널리즘이라는 놈은 노인으로 말하면 치매 같은 것이다. 장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자신 없음의 한 표현이겠고, 젊은이의 경우는 단순한 무지의 표출일 뿐이다.

일본에도 이러한 천박성은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지만 한국에도 있다.
"잠수어법은 제주 해녀가 일본 해녀들에게 가르쳤다."
하는 사람이 제주도에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러한 의견은 심리학의 대상이라 할지라도, 인식에 필요한 수속을 밟은 것이라 볼 수 없다. 우리 아시아인은 고대적 마음의 넓이를 좀더 많이 가질 수 없는 것일까? 제주도의 '해녀'를 생각하기 전에 잠수어법 일반에 대하여 생각해두는 것이 좋겠다. 잠수어법이란, 바다 속에 자맥질해 들어가서 물고기를 찔러 잡거나, 조개를 채취하거나 하는 고기잡이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이 이른바 스킨 다이빙으로서 스포츠의 하나가 되어 있으나, 이것은 원래 흑조권(흑조는 해류의 하나, 필리핀 군도에서 일본 열도의 태평양 연안을 따라 북상하다가 북미 서해안까지 흐르는 난류)에서 문화를 만들어온 여러 민족들의 것이었다. 그 시대에는 근대 국가니 하는 따위처럼 장벽을 완강하고 높게 쌓는 기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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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그가 <중앙일보>와 나눈 인터뷰 기사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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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부터 제주도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왠지 꿈의 섬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는 한라산과 초원이 있고, 그리고 바다가 있어서 많은 해녀들이 일하고 있다. 해녀만큼 멋있는 일은 없다고 나는 어렸을 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한 가지 이유는 잠수질이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바다에 들어가 고기나 조개를 잡는다는 것은 자연에 대한 하나의 평화로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신과 계약된 가장 평화로운 생업이 아닌가 하고 생각된다."





탐라기행

저자
시바 료타로 지음
출판사
학고재 | 1998-02-20 출간
카테고리
여행
책소개
고대 해상국 탐라로 재일 한국인 강재언 선생과 현문 숙 내외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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