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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일지

[D+281] 사진가 김영갑

sosobooks 2014. 8. 19. 13:17


[D+281] 소소책방에 있는 사진책들은 판매를 하지 않고 열람만 가능합니다. 사진책을 팔지 않는 이유는 책방지기가 사진을 좋아하기도 하고, 사진책 볼만한 곳이 마땅치 않기도 하고, 한번 팔면 다시 구하기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오늘 돌아가신 김영갑 선생님의 사진집 <김영갑 1957-2005>을 보고 판매하지 않느냐 묻는 분이 계셨는데 새 책으로 사시는 것이 좋겠다 말씀드렸습니다. 이 책은 새 책으로 구할 수 있습니다. 

영갑 선생님이 작고하신지도 벌써 10년이 흘렀습니다. 김영갑 선생님이 낸 책 가운데 <마라도>가 있습니다. 1995년 눈빛 출판사에 펴낸 사진책입니다. 선생님의 첫 책이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혹시나 <김영갑 1957-2005>가 헌책으로 나온 것이 있나 검색했더니 <마라도>도 눈에 띄는군요. 값이 45만원이었습니다. 교보문고 중고장터에 나와 있습니다. 

잠시 제 눈을 의심했는데, 선생님의 서명과 편지가 들어있는 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값이라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헌책이라도 초판, 절판, 상태, 서명, 메모, 편지, 작가의 생존 여부는 책값에 영향을 미칩니다. 작가의 흔적이 묻어 있는 절판된 초판본이라면 세월이 흐를 수록 가치가 더할 수밖에 없습니다. 책방지기도 이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방에 오시면 살펴 보실 수 있습니다. 인쇄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데 눈


빛에서 다시 펴낸다면 좋겠습니다.

꺼내기가 까칠거리지만 작가가 살아있을 때는 가치없다가 세상을 떠나고서야 주목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김영갑 선생님의 경우 생전 많은 고생을 하며 제주도를 사진에 담았습니다. 이름이 알려질 무렵 병을 얻게 되었구요. 예술가의 불행과 죽음이 그가 남긴 작품의 값을 매기는 잣대가 된다는 사실이 우울합니다만, 세상은 언제나 아이러니한 일들로 가득 찬 곳이니까요.

아래 링크는 <김영갑 1957~2005>가 출간되었을때 <오마이뉴스>에 썼던 서평입니다. [사진]은 2005년 가을, 제주도 두모악 갤러리를 찾았을 때 김영갑 선생님 모습이 담긴 액자를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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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 벌받은 사진가, 1년 만에 돌아오다
[서평] 유고사진집 <김영갑 1957~2005> 출간


제주를 사랑했던 사진가 김영갑,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으로 세상을 떠난 지 1년 만에 그가 돌아왔다. <김영갑 1957~2005>, 그의 파노라마 작품을 담은 사진집으로 태어난 것이다.

처음 사진가 김영갑의 사진을 본 것은 2003년이었다. 파노라마 사진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그때, 지인이 김영갑씨의 홈페이지를 소개했다. 제주의 바람과 제주의 빛과 제주의 풍광이 녹아있는 그의 사진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그리고 2004년 초 그의 사진에세이 <그섬에 살고 있었네(이하 <그섬에)>를 읽었다.

'그래, 적어도 사진을 사랑한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탁탁 막혔다. 이 책이 출간될 당시 사진가 김영갑은 병이 깊어 더 이상 카메라를 손에 쥘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그때가 루게릭 병을 앓기 시작한지 5년째였다.

그리고 2005년 5월 29일 그는 사랑했던 제주의 모든 것을 사진에 담아 두모악 갤러리에 남겨두고 제주의 흙으로 돌아갔다. 그는 '육지것'이었으나 진정 제주를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항상 이방인이었다. <그섬에>에는 그의 가슴앓이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 무료함을 달래려면 시간과 돈이 든다. 금전적으로 궁색한 나는 혼자 지내며 사진만을 생각한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돈이 절약되는 것들만 찾아서 한다. 사진찍는 사람에게는 사진만 생각하는 것이 돈을 절약하는 길이다. 

돈이 없고 시간이 많은 나는 늘 사진만 생각한다. 필름을 사고 나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고 보니 늘 혼자 지내는 처지다. 그래서 가끔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이는 섬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타박을 하고 어떤 이는 저희들 하고만 어울린다고 손가락질 한다."

<그섬에>에는 그가 얼마나 경제적으로 궁핍했는지 설명하는 글이 자주 나온다. 필름을 사기 위해 끼니를 거르고 하루 종일 제주의 시린 바람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카메라를 메고 오름에 올라 셔터를 눌렀다.

끈질기고 가혹했던 사진작업에 볕이 들 무렵 덜컥 병에 걸려버린 것이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신의 심술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형벌을 떠안았던 것이다.

그토록 사랑하는 제주의 풍경을 생생하게 두 눈으로 볼 수 있는데 근육은 소멸해 셔터를 누를 수 없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한 컷 필름 속에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었을 텐데 그것을 그저 바라보아야만 하는 것은 사진가에겐 최악의 형벌이었으리라.

그는 그렇게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땐 필름을 사기 위해 끼니를 건너뛰어야 할 정도로 궁핍했고,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만큼 형편이 나아지자 병을 얻었다.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도록 신이 그에게 형벌을 내린 것은 아마 그가 순교자의 길을 자청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신은 자신의 영혼과 육신을 쥐어짜는 예술가를 가만 두지 않는 모양이다. <그섬에> 말미에 안성수 교수는 이렇게 썼다. 

"'사진을 찍다가 순교하겠다, 여한 없이 사진을 찍다가 웃으며 죽고 싶다'던 그가 5년째 루게릭병과 싸우고 있다. …(중략)…돈도, 명예도, 가족도, 결혼도, 자기의 육신까지도 내팽개친 채 사진만을 꿈꾸며 살아온 그의 삶은 투철한 자기와의 싸움이었다. 현란한 유혹의 길을 살면서도 그는 자기 예술을 위해 가난한 순교자의 길을 자청했다."

오름의 억새밭 속에서 제주의 바람을 필름에 담기 위해 삼각대에 카메라를 받쳐두고 느린 셔터를 누르는 그의 모습. 바짓가랑이에 잔뜩 이슬을 묻히고 푸른 보리밭 사이를 카메라를 들고 누비는 그의 모습. 한라산 너머로 붉게 넘어가는 황혼을 파인더로 바라보며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반추하며 눈물 훔쳤을 그의 모습.

비록 생전에 그가 <그섬에>를 펴내긴 했지만, 그것은 '사진집'이 아닌 '사진에세이'였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사진집'을 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진집을 넘기면서도 그의 존재가 아쉽다. 

사진집 첫머리에 실려 있는 사진평론가 진동선씨의 글 중에서 '작가는 죽어서 평가받는다는 미술사의 오랜 진리'라는 문장이 가슴에 박힌다. 진동선씨의 글이다.

"이 땅에 그런 사진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역사적 관점에서 말하고 싶다. 사후 일주기를 맞이하여 출간되는 사진집의 의의는 그것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아니 작가는 생의 존재 이유를 작품집에서 찾는다. 이 사진집이 김영갑이라는 사진가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또 그가 걸어온 지난 20년 사진 세계를 바라보는 단초가 되길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잃어버린 그의 절반의 행복을 되찾아주는 일이거니와 작가는 죽어서 평가받는다는 미술사의 오랜 진리를 복원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사진집 말미에 루게릭병에 걸리기 전 그의 모습이 담겨있다. 고집스러워 보이는 눈매, 꽉 다문 입술…. 시퍼렇게 날이 선 고독한 사진가의 모습이다.

다시 사진집의 첫머리로 넘어간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야윈 얼굴이 담겨있다. 모든 욕심을 바람에 실어날리고 있는 듯하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 사진 작업을 하지 못한 5년 동안 가장 선명하게 떠올랐다던 '둔지봉'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의 사진집엔 제주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바람, 들판, 오름, 구름…. 그의 사진 속에 담긴 제주는 '변덕'스럽고, '오묘'하고, '아름'답고, '황홀'하다. 그는 아마 제주를 잊지 못해 바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떠난 지 1년, 다시 한 번 진정한 사진가였던 고인의 명복을 빈다. 사진집을 덮으며 마지막으로 그의 '사진론'을 옮겨본다.

"사진을 계속할 수 있는 한 나는 행복할 것입니다. 살아있음에 끝없이 감사할 것입니다. 나의 사진 속에는 비틀거리며 흘려보낸 내 젊음의 흔적들이 비늘처럼 붙어 있습니다. 기쁨과 슬픔, 좌절, 분노…. 내 사진은 내 삶과 영혼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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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그는 흙으로, 풀로, 바람으로 돌아왔네 
사진집 '작가소개'를 통해 본 사진가 김영갑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이래 20여 년 동안 사진가 김영갑은 고향땅을 밟지 못했다. 서울에 주소지를 두고 1982년부터 제주도를 오르내리며 사진 작업을 하던 중 그 곳에 매혹되어 1985년부터 아예 섬에 정착했다. 바닷가와 중산간, 한라산과 마라도 등 섬 곳곳 그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밥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고프면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달랬다.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찍는 사진 작업은 수행이라 할 만큼 영혼과 열정을 모두 바친 것이었다. 

그는 창고에 쌓여 곰팡이꽃을 피우는 사진들을 위해 갤러리를 마련하려고 버려진 초등학교를 구하고 초석을 다졌다. 그 무렵이었다. 사진을 찍을 때면 셔터를 눌러야 할 손이 떨리기 시작하고 이유없이 허리에 통증이 온 것은.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루게릭 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점점 퇴화하는 근육을 놀리지 않으려고 손수 몸을 움직여 사진 갤러리 만들기에 열중했다. 이렇게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2002년 여름에 문을 열었다. 

투병 생활을 한 지 6년 만인 2005년 5월 29일, 김영갑은 그가 손수 만든 두모악 갤러리에서 잠들었고, 그의 뼈는 두모악 갤러리 마당에 뿌려졌다.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저자
김영갑 지음
출판사
휴먼앤북스 | 2013-12-2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섬을 사랑한 남자, 그 남자를 기른 섬김영갑은 섬에 첫발을 디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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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 1957~2005

저자
김영갑 지음
출판사
다빈치 | 2006-05-15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그 섬에 그는 흙으로, 풀로, 바람으로 돌아 왔네‘뭍의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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