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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32] 568돌을 맞은 한글날입니다. 10월에는 모든 공휴일은 쉬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오늘만큼은 문을 열었습니다. 쓰고 보니 뭔가 비장한(?) 기분입니다. 소소책방 운영원칙 가운데 하나가 "하루 8시간 일하고 한 달에 4일 이상 쉬겠습니다" 입니다. '4일 이상'을 강조하고 싶군요. 

책방을 열 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돈 벌기는 힘들겠지만 짧든 길든 책방지기로 일하는 동안은 행복하고 싶다, 고 말이죠. 손님은 불편해도 책방지기만 즐거우면 된다는 식 아니냐 이야기 하는 분도 계셨지만, 이 원칙을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하하.

한글날이니 책방 진열장에 전시해 둔 책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국어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님의 <우리 말본>(정음사)입니다. 이 책을 부산 연산동 <헌책방>에서 찾곤 정말 기뻤습니다. 간혹 헌책방을 다니다 보긴 했는데 값이 비쌌거나 다른 책에 밀려 구입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헌책방> 정영곤 대표님께서 저렴하게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 책 표제지에는 단정한 글씨로 책을 구입했던 분이 짧은 기록을 남겨두었습니다.(사진 참조) 아이가 태어난 시와 분까지 써둔 것을 보면 굉장히 꼼꼼한 성격을 가지고 계시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단기 4288(1955년). 3. 27일
전일인 3. 26일 오전 6시 22분(1965.6.3 기입)
3남 탄생 기념 매입
대학당서림
정가 2할감.

<우리 말본>에 한자로 기록해서 아쉽기는 하지만, 셋째 아들이 태어난 기념으로 책을 구입하고 책에 그 일을 적바림한 아버지 모습을 떠올리니 책방지기 마음까지 따뜻해집니다. 아이들에게 우리글을 제대로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우리 말본>을 구하셨겠지요.

책장을 넘기면 당장 부스러질 듯한 이 책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5년 나왔습니다. 모든 물자가 부족했던 시기라 종이 질도 나쁩니다. 책의 앞 부분 908쪽 가운데 앞 1/4 정도는 상태가 더 좋지 않습니다. 더 오래 묵은 종이를 썼거나 다른 재질을 가진 종이를 썼던 듯합니다.

원래 이 책은 1937년 초판이 나왔고 1955년 판은 '고친 박음' <우리 말본>입니다. 1950년 <우리 말본> 지형이 모두 타버려 전쟁이 끝내고서야 다시 펴낼 수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민족상잔의 시련 속에서도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한 최현배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선생님의 글입니다.

"나의, 이, 변변찮은 지음 <우리 말본>이 아마도 많은 부족한 점을 가진 채, 조국의 마음을 붙들며, 겨레의 정신을 지키고자 하는 청년 남녀의 은근한 친구가 되어, 일제의 무도한 압박과 혹독한 천대의 아래에서도, 항상 남에서 북에서, 또 도회지에서 산간 벽촌에서, 끊임없이 부름을 받아 온 것은 지은이로서 영광과 만족이 이에 더할 수 없는 바이라 생각한다.

두째 번 세계 대전은 얽매힌 배달 겨레에게 풀어놓음을 가져오고, 옾눌힌 배달 민중에게 일어남을 주었다. 이에 '우리'(우리 말본의 '우리')의 붙들어 온 조국의 마음은 활짝 필 봄철을 만났으며, 지켜 온 겨레 문화의 활발한 창조가 만인의 심장과 손발을 바쁘게 한다.

지나온 높은 고임을 감사하며, 앞에 놓힌 할일의 많음을 기뻐하며, 장래에 맺을 문화의 열매를 기약하고자, 이에 약간의 고침과 기움을 더하여, 이제 박음을 내는 바이다."

이 글을 쓰실 때(1950년 2월)에만 해도 한국전쟁이 일어날 줄을 꿈에도 모르셨겠지요. 4년 후에는 짧은 한 문장으로 글을 맺습니다.

"고친 박음의 지형이 다 되자 마자, 6.25사변으로 그만 타 버렸다. 이에 다시 기움을 더하여 새 판을 짜게 하였다."

한글날을 맞았으니, 말과 글을 헛되이 쓰고 있지 않나 반성해 봅니다. 스스로 반성도 하지만, 메마르고 거칠고 모양새를 갖추지 못한 글과 말을 쓰는 젊은이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점수따기 위한 국어 공부가 아니라 생각을 갈고 닦고 말하고 쓰기 위한 책읽기를 먼저 하길 부탁하고 싶군요.

최현배 선생님의 <우리 말본>은 구해 읽기 힘들겠지만, 대신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 문장 쓰기>, <우리 글 바로쓰기>는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읽기를 권해드립니다.




우리말본(유인교정본) - 1932년판

저자
최현배 지음
출판사
연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2-04-3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우리말본(유인교정본) - 1932년판』은 최현배가 지은 문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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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장쓰기

저자
이오덕 지음
출판사
한길사(도) | 1992-03-01 출간
카테고리
교재/전문서적
책소개
우리 문장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매우 소중한 책.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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