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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85] 이제 책방에서 새 책도 판매합니다. 포토넷+포노+걷는책의 책들입니다. 사진, 음악, 교양서입니다. 친정에서 가져온 보퉁이를 풀어놓은 기분입니다. 제가 일하고 신세를 졌던 곳에서 만든 책이라 애틋한 마음까지 드는군요. 멀리 서울서 진주까지 책을 가져다 주신 김승환 팀장님, 청주에서 책살림을 꾸리고 있는 재복씨 고맙습니다.

인연이란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 2006년 12월, '<윤미네 집> 복간을 기대하며...'라는 글을 썼던 적 있습니다. 그런데 3년 후 제가 포토넷에서 일하며 <윤미네 집>을 다시 펴내는 일을 맡게 될 줄은 그 때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책을 펴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짧은 시간 편집자로 일하며 가장 보람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젠 책방지기가 되어 책을 팔고 있으니, <윤미네 집>만 놓고 보면 독자-편집자-책방지기로 처지가 바뀌었군요. 매대에 올려둔 책 모두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책방에 오시면 찬찬히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아래는 2006년 12월 16일에 썼던 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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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꽂혀있는 사진집 중에서 가장 아끼는 것은 전몽각 선생님(전 성균관대 부총장)의 <윤미네 집>이다. 

아마추어 사진가로서 단 한권의 사진집을 낼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가 찾아온다면 나도 <윤미네 집> 같은 사진집을 내보고 싶다. 사진집 이름은 <해목이네 집>이나 <목각이네 집>이면 되겠지. 

얼마 전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활동 중인 노순택 선배와 만나서 이야길 나누다가 <윤미네 집>이 복간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더 없이 반가웠다. 함량이 떨어지는(?) 사진책들이 판을 치는 출판시장에서 <윤미네 집> 같은 사진집은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대박 히트 사진집이 되리란 것도. 

나를 포함한 많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부족한 것이 바로 끈기다. 어떤 주제라도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진다면 어느 수준에 이를 수 있는데 항상 조급증을 느끼고 뭔가 특별난 피사체가 없나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전몽각 선생님의 <윤미네 집>은 바로 진정한 아마추어리즘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태어나서 시집갈 때까지 딸의 모습을 26년 동안(1964년부터 1989년까지) 담은 아마추어 사진가 전몽각 선생님의 끈기는 존경의 차원을 넘어선다. 끈기도 끈기지만 <윤미네 집>에는 큰딸 윤미씨의 성장을 바라보는 전몽각 선생님의 따뜻한 시선이 넘친다. 부제도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다. 

빼어난 구도도 번쩍이는 아이디어도 선명한 화질도 가슴 먹먹한 아빠의 부정(父情)을 넘어설 순 없다. <윤미네 집>은 사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렌즈 너머 대상을 바라보는 사진가의 따뜻함(끈기를 포함해서)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시골집에 내려와서 오랜 만에 다시 '전몽각 드림'이라는 푸른 인장이 찍혀있는 <윤미네 집>을 꺼내보았다. 146~147쪽에 있는 사진은 다시 봐도 인상적이다. 윤미씨가 남자 친구와 데이트 하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다. 전몽각 선생님의 후기를 그대로 옮겨본다. 

"1989년 4월 윤미의 짧은 연애시절이었지만 그 행복한 한 때를 기록하고 싶었다. 몇 미터 그들 뒤를 따르면서 나대로 사진을 찍을테니 아빠를 의식하지 말 것, 평소대로 행동할 것 등을 약속하고 하루를 할애 받았는데 두 시간만인가 나는 먼저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너무나 방해가 되는 것 같아서." 

두 딸을 가진 아빠로서 전몽각 선생님의 그 때 '방해가 되는 것 같아서 돌아온' 심정이 짚이기도 하지만(아마 굉장히 속이 쓰리셨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조만간 곁에서 떠나갈 딸의 모습을 담아 <윤미네 집>을 완결짓기 위한 사진가의 '고집'이 한없이 존경스럽다. 만약 <윤미네 집>에서 그 두 장의 사진이 없었더라면 정말 허전했을 것이다. 

전몽각 선생님은 지난 5월 6일 세상을 떠나셨고, 11월 15일부터 21일까지 인사갤러리에서 추모전도 열렸었다. 늦게나마 앞선 길눈이셨던 존경했던 전몽각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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