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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42] 날이 어두워졌는데 간판 불 켜는 것조차 잊고 독서삼매경에 빠졌습니다. 어제 일이군요. 새로 들어온 책 중에 문고판 몇 권이 있었는데 그 중에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된 <부생육기浮生六記>란 책이 있었습니다. '흐르는 인생의 찬가'라는 부제가 붙어있었죠. 1969년 초판이 발행되었고, 제가 읽은 것은 1972년 판입니다. 당시 이 책의 가격은 360원입니다. 저보다 더 나이를 먹은 책입니다. 

이 책은 청나라 건륭제 시기(18세기 말)에 살았던 심복이라는 이의 자서전입니다. 여섯 가지 이야기를 장을 달리해 담아 '육기六記'인데 '부생浮生'은 덧없는 인생을 뜻합니다. '부생'은 이백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시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덧없는 인생 꿈만 같아, 浮生若夢
즐거움 얼마나 누리리?" 爲歡幾何

이백은 봄밤 복숭아꽃 배꽃 핀 정원에서 이 시를 지은 모양입니다. 꽃 흐드러진 정원을 거닐며 '덧없는 인생'을 떠올리는 시인의 마음을 쉽게 이해하긴 힘드네요. 물론 슬픔이 마음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면 어여삐 핀 꽃도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간판 불 켜는 것조차 잊을 만큼 <부생육기>에 마음을 빼앗긴 이유는 심복과 그의 아내 운의 사랑 이야기가 아름답고 애절했기 때문입니다. 운은 남편을 두고 마흔한 살의 나이에 먼저 세상을 떠났고, 후에 심복은 사랑하던 아내를 추억하며 글을 남깁니다. 

운에 대해 임어당은 <생활의 발견>에서 "중국 문학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인"이라 평합니다. 저도 책을 읽으며 보화에 마음을 두지 않고, "갈피가 떨어진 서적이나 모가 이지러진 서화는 오히려 소중히 여긴" 그녀에게 마음을 뺏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책비닐을 입힌 것은 심복과 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해야겠군요. 현명하고 속깊은 정을 나눌 수 있었던 아내를 먼저 보냈으니 슬픔과 그리움이 그만큼 클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운)는 갈피가 떨어진 서적이나 모가 이지러진 서화는 오히려 소중히 여겼다. 서적으로서 갈피가 떨어진 것은 반드시 찾아모아서 분류 편집하여 책을 엮고, '단장의 편집'이란 이름을 붙였다. 서화로서 찢겨나간 것은 또 반드시 헌종이로 때워 온전한 한폭이 되게 한 다음 빠진 곳을 나더러 써넣거나 그려넣게 하고는, 이것을 말아서 '여운의 감상'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바느질이나 부엌일의 틈을 타서 운이는 온종일 이런 일을 꼬물꼬물하면서 조금도 귀찮게 여기지 않았다. 운이는 헌 상자 속의 해어진 두루마리 가운데서 혹시 볼만한 것이라도 얻게 되면 마치 값진 보배나 얻은 듯이 좋아했다. 이웃에 사는 풍이란 여자는 헌 두루마리가 생기게 되면 우리 집에 가져와 팔았다. 운이의 이러한 취미는 나와 똑같았다."


* 링크는 장국영이 부른 <부생여몽>입니다. 이 책을 읽은 어제가 그가 허망하게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이군요. 그에게 삶은 덧없는 것이었을까요. 알 수 없군요.

http://www.youtube.com/watch?v=5GR3IfS0DIQ



부생육기

저자
심복 지음
출판사
책세상 | 2003-01-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1. 중국 청대 자전문학의 대표작 중국 청대에는 관계(官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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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완역)

저자
임어당 지음
출판사
범우사 | 2011-04-2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이 책은 일종의 생활철학, 즉 인생 60, 이 짧은 생애를 어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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