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19] 예전 사진월간지 에서 일할 때 1년 정도 '사진가의 책가도' 코너를 맡아 진행했었습니다. 임수식 작가가 서가(책가도)를 촬영하고 저는 인터뷰를 했습니다. 존경하는 분들의 서재를 방문하고 책 이야기를 듣는 일이 좋았습니다. 책을 읽는 것보다 대화하며 더 많은 지식과 깨달음을 얻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사진가의 책가도'를 취재하며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사진을 공부하며 궁금했던 것들을 선생님들께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란 흔치 않으니까요. 제가 만난 선생님들께선 사진가에게 독서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죠. 어떤 분야든 '인문 소양' 갖추기 위해 힘써야 하는 이유는 창작하는 힘을 기르고, 작품을 해석하고, 통찰력을 키우는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타고난 재능으로 주목을 받을 수 있겠지만 소양 ..
[D+314] 행복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들이 많습니다. 경쟁이 치열한 조직에 몸담고 있거나,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사회 구성원일수록 '행복'에 대한 갈망은 커집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외톨이로 지내지 않는 이상 홀로 행복을 추구할 순 없습니다.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져야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사회나 국가에서 개인의 행복을 지켜내는 일은 어렵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성공을 좇고 행복을 찾았다 하더라도 그것의 가치를 이야기하긴 힘듭니다. 행복에 관한 책들을 즐겨 읽진 않습니다만, '행복=성공'으로 이야기하는 책들을 보면 딱할 때가 있습니다. 개인의 성공이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 줄까요? 남들과 비교해 나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
[D+313] 아이들이 연필로 또박또박 정성껏 눌러 쓴 글씨를 좋아합니다. 칸과 칸 사이 줄과 줄 사이 적당한 크기로 비뚤어진 획 없이 한 자 한 자 공들여 눌러 쓴 글씨를 읽는 일은 인쇄된 활자를 읽는 것과는 다른 멋이 있습니다. 손편지나 엽서를 주고 받던 시절의 낭만이 이젠 사라지고 없군요. 드물지만 편지나 메모글을 받아 읽는 일은 즐겁습니다. 답장하는 일도 그렇구요. 어제 책방에 신영복 선생님의 책 (돌베개)이 들어왔습니다. 2008년에 출간 20주년을 맞아 나온 책입니다. 초판은 원래 햇빛출판사에서 나왔는데 증보판은 돌베개 출판사에서 출간했습니다. 까지 놓고 보니 한 세트가 되었군요. 을 영인본으로 꾸민 에서 '청구회 추억'을 읽은 적 있습니다. 낡은 갱지에 볼펜으로 담담하게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D+311] 지난 추석 큰 고모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큰 고모는 창원에서 작은 동네책방을 꾸리고 계십니다. 제가 헌책방을 열겠다고 했을 때 많은 걱정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말리지는 않으셨죠. 실은 7월쯤 책방을 그만두어야겠다 생각하셨는데 아이들(사촌동생들)이 말려서 다시 마음을 되돌렸다 하셨습니다. 어려운 책방 살림을 돕겠다고 했답니다. 다행이다 싶습니다. 책읽는 습관은 부모님이나 가까운 이에게 물려받거나 영향을 받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와 고모들께 많은 영향을 받았죠.(책방지기를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만.) 책에 둘러싸여 사는 책방지기임에도 책을 선물로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물받은 책들은 어떻게든 읽어보려 노력합니다. 책방에서 공연했던 이내씨가 선물로 건넨 (문학동네)을 책..
[D+309] 안타깝게도 책방지기가 좋아하지만 책방 문 닫을 때까지 주인을 찾지 못하고 저와 함께 있을 것 같은 책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오래된 문고판들인데 앞에도 여러 번 썼지만 저는 문고판을 '지극히' 사랑합니다. 무엇보다 책값이 저렴해 부담없고, 작아서 가지고 다니기 편하고, 서가 자리도 많이 차지하지 않고, 선물하기도 좋습니다. 그리고 속독하는 맛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두꺼운 책을 쉬이 읽기 힘든 것은 부피가 주는 압박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고판이야말로 마음 편하게 독서의 참맛을 느끼게 하는 귀한 존재입니다. 출판사나 책방 입장에선 그리 남는 것이 없지만요. 신문사에서도 문고판을 낼 정도로 전성시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문고판을 내는 출판사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다른 책방에 갈 일이 있으면 좋..
[D+307] 책을 정리하거나 살펴보다 갈피에 물건이 있으면 따로 보관합니다. 책방지기 뒤에 보관함이 있습니다. 주로 책갈피지만 메모지나 편지가 나올 때도 있고, 영수증, 사진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집에서 가져온 책을 정리하다 막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그린 종이인형을 발견했습니다. 예전에 꽤 열심히 그리고 오려서 가지고 놀던 걸 기억합니다. 옷을 분리(?)하니 깨알 같은 공주 그림이 있는 속옷을 입었군요. 지금은 요런 것 따윈 관심 없는 고학년이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요. 책 속에 들어있었던 물건들이 쌓이면 책방에서 전시해 봐도 좋을 듯합니다. 아직 모아둔 것이 많지 않으니 더 시간이 지나야겠지요. 아이의 그림이 들어있던 책은 크빈트 후흐홀츠의 그림에 밀란 쿤데라, 미셸 투르니에 등..
[D+305] 담뱃값 인상에 대한 찬반 논쟁이 뜨겁습니다. 흡연자 입장에선 정부안대로 2천원이나 오르면 부담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한갑에 4~5천원이면 비싼 값입니다. 우리보다 담뱃값이 비싼 국가도 많지만 정부의 처사가 못마땅한 것은 국민의 금연이나 건강에 대한 배려보다 세수 부족을 메꾸기 위한 꼼수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담뱃값을 인상하기 전에 담뱃갑 디자인부터 담배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도록 바꿔야 합니다. 많은 국가에서 흡연의 위험을 알리는 '끔찍한 사진'을 넣지만 WHO 176개 회원국 가운데 70개국이나 시행하고 있는 이 디자인을 우리나라는 지금껏 도입하지 않았습니다. WHO의 담배규제기본협약을 맺고도 지금껏 이행하지 않다가 이제야 하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저도 넓은 의미로 보자면 ..
[D+298] 창호지에 어리는 달빛에 몸 뒤척이다가 못내 설레는 가슴 마루 끝에 나서서 활짝 열린 사립을 넘어보다가 사무치는 그리움 더욱 못 이겨 훤한 마당 질러 동구에 나섰다가 동구 옆 새하얀 메밀밭가를 옷고름에 눈물 적시며 온통 서성이다가 이윽고는 타는 가삼 불나서 불나서 머언 신작로까지 나갔다가 막차도 끊긴 신작로를 열 발 높은 수숫대로 종내 목 늘이다가 끝내는 오열 솟구쳐 길섶 찌르레기 울음으로 스러지는 마음 차운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그만 푸른 눈빛으로 우러르는 거기 부처님 같은 어머님의 만월 ................. 1988년 실천문학사에서 나왔던 시집 첫 장에 실린 고재종 시인의 '추석'입니다. 헌책방에서 시집을 사서 갈무리를 해두었던게 5년 전입니다. 이 시를 마주하니 어린 시절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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